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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시인협회 시총서]<시향만리>(2집)심예란 詩論:서지월-'육화된 정서

아미산월 2008. 9. 18. 02:26

[연변시인협회 시총서]<시향만리>(2집)심예란 詩論:서지월-'육화된 정서의 詩'

 

 

<심예란 詩論>

 

육화된 정서의 詩

 

 

서 지 월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시인)

 

  한국과는 다른 연변의 시단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한국이나 중국 만주땅 마찬가지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남한과 북한이 분단되듯 중국 만주땅도 중국의 손에 넘어갔다. 그러니까 만주땅은 일제강점기 중국에 넘어가기 이전 청나라의 땅이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수많은 이민족들이 자리다툼한 땅이기도 했다.

  땅이 넓은 만큼 바람도 세고 추위도 심한 만주땅, 거기 지금 조선족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이 쓰고 있는 모국어 즉 조선어(朝鮮語)는 이제 그들의 문화요 정신사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조선어와 중국어를 번갈아가며 쓰야 하는 운명도 그러하지만 모국어의 정서를 잃지 않고 있다는 것, 장한 일이다. 한 민족이 갖는 고유한 언어, 말속에 스며있는 정서가 바로 그것이다.

  조선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문학작품도 마찬가지 그들이 붙들고 있는 삶의 정서에 대한 순환인 것이다. 나는 남달리 만주땅을 아버지의 아버지 품처럼 늘 사무치게 그리며 그 땅을 밟는데 늘 즐거운 보법이었다. 그런 만큼 만주땅 조선족들의 정서가 나의 정서 즉 우리 한민족의 정서임을 알고 남달리 매력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말하자면 연길뿐이겠는가, 장춘 길림 도문 하얼빈 목단강시 단동 통화 등지에서 발간되는 조선족의 문예지나 개인 창작집 문학작품 속에 고스란히 배어있는 정서가 동질의 것임을 인식했을 때 눈을 가려도 지워지지 않는 민족혼이라는게 떠올랐던 것이다.

  한국에도 시인협회가 있지만 연길에도 연변시인협회가 있다는 것 장한 일 아닌가. 여기 소속되어 있는 심예란시인의 시작품을 접했을 때 전혀 낯설지 않는 이웃마을 여인처럼 느껴졌으며 내 누이처럼 보였던 것이다. 연길의 원로 김응준시인이 맡고 있는 「시향만리(詩香萬里)」라는 연변시인협회 시잡지 이름에서도 풍겨져 나오듯이 '시향(詩香)'이란 시를 쓰는 시인의 혼(魂) 다름 아니며 그 편편의 시속에 흐르는 정서가 바로 삶의 숨결인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만주땅 전역에 산재해 있는 문예잡지 및 문학작품집과 만주땅 시인들 개개인 시편들을 수없이 많이 접해왔고 지금도 머리맡에 두고 탐독하고 있다. 이는 무얼 말하는가. 서구의 문학작품 대하듯 낯설지 않는 그러면서 나에게 아주 익숙하게 다가오는 동질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더욱 매력을 느끼며 친근감이 간다는 뜻이다.

  심예란시인의 시를 접하면서, 나는 만주땅 연길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여인의 삶의 숨결을 나름대로 훈훈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시가 갖는 형식미도 형식미이지만 중년 조선족 여성의 시정신이 깊게 자리하고 있는 매력을 갖게 된 것이다.

  먼저, 시 <두만강>를 보자.

 

허리 굽은 두만강이
구겨진 옛말을 다듬질하는 소리

아리랑 고개를 넘는다

 

천지가 드리운 흰 수염은
태초의 할아버지

 

각이 삐뚤어진 력사를
애써 맞추며
건정건정 걸어온다

 

ㅡ시 <두만강>전문.

 

  이 시가 아주 밀도 있게 다가오는 것은 쉽게 씌여진 게 아니라는데 있다. 시가 갖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비유와 상징이 적절히 잘 배합되는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허리 굽은 두만강'에서 ''허리 굽은' 의 의미라든지 '구겨진 옛말을 다듬질하는 소리', '아리랑 고개를 넘는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민족정서를 잘 구현하고 있는 대목으로 보여지는데 '구겨진 옛말'은 애환 많은 삶일 것이며, '다듬질하는 소리'는 인내로 추스린다는 뜻 아니겠는가. '아리랑 고개' 역시 쓰리고 아린 애환의 정서인 것이다. 이런 이미지들이 두만강으로 잘 의미화 하고 있는 것이다.

  천지의 폭포 역시 '흰 수염은 태초의 할아버지'라 했는데. 이런 비유가 신선한 것은 두만강이나 천지를 느낀 대로 마구 읊는 형식이 아니라 의미화하는데 공헌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각이 삐뚤어진 력사'라는 표현이 아주 두각을 나타내는데 순탄하지 않는 내력이며, '애써 맞추며 / 건정건정 걸어온다'에서도 풍겨져 나오는 것은 질긴 생명력의 총체적인 삶으로 두만강이 존재해 온 것이리라. 민족정서를 아주 함축적으로 노래한 한 작품으로 읽힌다.

 

손이 운다
가냘픈 어깨를 달싹이며
눈물을 떨군다

 

손톱눈 비집고 나온
푸른 베짱이 
백양나무 그늘 쓰고
노래 부를 때

 

빈 오두막이
쓰러지는 소리로
손이 운다

 

울다가 울다가
열 손가락 개미발 되어
다시
긴다 긴다

 

ㅡ<손> 전문.

 

  위의 <손>이라는 시에서는 놀라운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는데 손을 통해서 보여주는 세계 역시 설움 내지는 애환 또는 헤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눈물을 훔치며 서러운 이별을 많이 경험한 우리로서는 인간이 갖는 비애의 정서로 읽힌다. 그것을 시인은 눈물을 훔치는 행위인 손에 비유되어 더욱 실감을 자아내고 있다. 제1연의 눈물의 행위 표현에서  제2연에서는 배경이미지로 백양나무 그늘 아래 베짱이가 노래 부를 때라는, 아주 칼라풀한 정적 이미지가 깔리는 것이다.

  한 편의 시가 울림이 크고 깊은 의미를 가지려면 그 자체의 정황만 가지고는 단순하게 흘려버릴 수 있다. 그걸 잘 극복하고 있는 대목이 제3연이다. '빈 오두막이 / 쓰러지는 소리로 /손이 운다'고 했다. '빈 오두막이 / 쓰러지는 소리' 라는 이런 표현은 쉬이 끌어올 수 있는게 아니라 본다. 내용상으로 볼 때도 그만큼 처절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하겠다.

  마자막 연에서는 더욱 절절한데, 그러한 울음이 열 손가락 모두 아릴 정도로 좀처럼 그치지 못함을 뜻한다고 보면 옳을 것이다.  <손> 이라는 이 작품 역시 베짱이 백양나무 오두막 같은 친숙한  정감적 이미지들로 잘 구가시키고 있다는데 장점으로 읽힌다.

  아래 <재혼>이라는 시를 보자.

 

섬돌 우에
고무코신과 검은 구두 나란히 앉아있다
여린 손가락은 검은 구두를 집어
고무코신과 멀리 떨어진 곳에 털썩 놓는다
구두는 자기 몸뚱이를 평형 잡으려 하였으나
다리목 관절이 삐지는 통에 옆으로 넘어진다
고무코신은 달려가 구두를 부축인다
여린 손가락이 모질게 힘쓰는 통에
가늘고 끈기 없는 코신 눈길이 다시 풀려진다 

방안에서 비쳐오는 여인의 어깨는 조금씩 달싹인다
그 흔들림에 토막토막 끊어진 등불 빛은
창살 사이로 흘러나와 어둠에 쓰러진다 

방문이 열린다
흔들리는 바지가랑이 사이로
입술이 꾹 닫힌 구두 얼굴이
잠간 언뜰거리다가 사라진다

밤 깊어 끌신을 아무렇게 꿰신고
담장 밑에 앉아 오줌 누며 하늘을 보면
북쪽 하늘에 새로 생긴
고무코신과 검은 구두의 별자리는
날이 새도록 은하수 옆에 나란히 앉아있다

 

ㅡ시<재혼> 전문.

 

  놀라운 상상력의 잔치를 한눈에 보는 듯하다. '섬돌 우에 고무코신과 검은 구두'와 '방안에서 비쳐오는 여인', 그리고 '북쪽 하늘'의 '새로 생긴 별자리'를 통해 보여주는 세계는 예사가 아니다. 묘사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이 시가 갖는 함축적인 표현들이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

  재혼한 어머니와 계부와의 관계를 어린 나이인 주인공 즉  '여린 손가락은 검은 구두를 집어 / 고무코신과 멀리 떨어진 곳에 털썩 놓는다'는  의미와 '구두는 자기 몸뚱이를 평형 잡으려 하였으나 / 다리목 관절이 삐지는 통에 옆으로 넘어진다'는 대비, 그리고 '방안에서 비쳐오는 여인의 어깨'와 조금씩 달싹이는 흔들림에 '토막토막 끊어진 등불 빛'이 '창살 사이로 흘러나와 어둠에 쓰러지'고, 방문이 열리며 '입술이 꾹 닫긴 구두 얼굴이 잠간 언뜰거리다가 사라진다'는 행위적인 정황이 뛰어난 묘사와 함께 병치를 이루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화자의 행위를 통해 보여주는 가식없는 세계인데 예사롭지 않은 대목인 '밤 깊어 끌신을 아무렇게 꿰신고'와  '담장 밑에 앉아 오줌 누며 하늘을 보면'에서의 여성의 습성 그 자체가 실감을 자아낸다. 또한 신선한 의미로 다가오는 '북쪽 하늘에 새로 생긴 / 고무코신과 검은 구두의 별자리는 / 날이 새도록 은하수 옆에 나란히 앉아있다 '에서의 화자의 공허감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긴 복도에 
쌓여진 발자국들 깨여지고 있다
젖 달라는 발버둥 소리
징징, 떼질 소리

 

장대걸레 아줌마는 
층계를 오르다 떨어진 발자국을
그저 아기요람 흔들어 주듯
하나씩 밀어내고 끌어 당긴다


ㅡ시 <장대걸레 미는 아줌마 > 전문.

 

  이 시에서 보여주는 것은 힘겹게 살아가는 '장대걸레 미는 아줌마'의 노동이다. 긴 복도가 힘겨운 한 생으로 대비되기도 하는데, 등에는 젖 달라는 아기의 '발버둥 소리'와 '징징'대는 소리다. 그러나 노동을 해야 살아가는 것인 만큼 '떼질 소리'에 정신이 없다. 그 행위를 시인은 '그저 아기요람 흔들어 주듯 / 하나씩 밀어내고 끌어 당긴다'는 긍정의 표현을 했듯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애정이 돋보인다.


가스불 담금질에 철물이 녹아발린 얼굴이다
쳐다보는 이 아무도 없다
주방의 하루저녁은 저물어 간다
가재미처럼 찬장바닥에 엎드려
뒤척이는 밤(夜)의 껍질 한 겹 한 겹 벗길 때면
늙은 추억은 손가락끝에 묻어나고
아직 오지 시간이 새벽허리를 휘감으며
살포시 옆에 눕는다
골며 잠드는 사이, 흠친 코소리 곁으로
이마에 구술땀 얼룩진 앞치마나
수세미나 별로 쓸모없는 식기들이
무심히 스쳐 지난다
어둠의 살창 부여잡고
술잔같은 작은 목숨들에서 실려오는
낯익은 냄새에 가만이 미소를 지어본다
주인은 갓 사온  랭장고 놓을 자리를 닦느라 분주하다  
아스라이 깜박이던 위성이
밤새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옮긴다

 

ㅡ심예란 시 <냄비> 전문.

 

  즐거움이라기 보다 여인에게 노동이라 할 수 있는 부엌, 즉 주방의 가스불에 냄비를 넣어놓고 분주한 가사노동을 하는 풍경 역시 고단한 삶의 몸짓 다름 아닌 것이다. 그래도 가스불에 끓는 냄비의 '낯익은 냄새에 가만이 미소를 지어'보는 중년여인의 여유가 깊어가는 밤의 정취로 와 닿는다.

  미물인 <자벌레>를 노래한 시를 보자.

 

허리를 오무렸다 폈다하며
몸으로 꿈을 재는 자벌레
버드나무 삭정이에 목숨을 건다
자라처럼 움츠렸던 목을 천천히 빼들고
사위를 둘러보아도 눈앞이 아찔한 공중 줄타기
회오리 바람손에 목덜미 잡히면
여린 꿈은 땅에 떨어져 몇바퀴 뒹굴다가 다시 기여간다
청장공로(青藏公路)따라 오체투지하는
장족(藏族)사나이 몸짓이다
저 속도로 시간을 재였을 것이다
저 인내로 길도 재였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여져서는
저렇게 땅에다 몸을 달구었을 것이다
그도 가죽 앞치마로 배와 무릎 가리웠을 것이다
나무장갑을 끼고 손으로 땅을 딛는 초원의 생명
갓 돋아나는 꽃잎의 욕망을 재느라
발끝 무릎 가슴 이마에 피를 묻힌다
길 없는 길을 만들어 간다
맨 가슴을 땅에 부벼대고 싶어
제 몸을 허물어 가시밭길 만든다
삶과 죽음은 수레바퀴처럼 련결 되여
줄 우와 아래를 넘나들며
모든 생명을 유혹한다
더 오랜세월이 흘러
땡� 아래 몇줌 모래알로 번식되여도
두 손에 눈금을 꼭 쥔 채
삶을 재는 파아란 자대여! 

 

ㅡ심예란 시 <자벌레 > 전문.

 

  기어가는 자벌레의 모습과 장족의 오체투지를 통해 보여주는 세계는 무엇인가. 인간사 고행의 현실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고 할까. 미물인 자벌레를 통해서 또는 장족의 오체투지 그 힘든 고행을 통해서 모든 목숨 있는 것들의 끝이 어디인가를 암시해 준다. 행복을 추구하는게 인간 본연의 갈망이라 하지만 그건 변화무쌍의 세계가 공존하는 세상에서는 번뇌와 고뇌 갈등을 제거할 수 없는 것이다.  

  종교와 고행이 추구하는 것은 수행과 득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건 현실을 넘어선 세계에서 가능한 일, 살아가는 일도 시를 쓰는 일도 이와 같다면 틀린 말일까. 이 시를 통해서 심예란시인이 걸어가는 삶은 오체투지도 마다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이 번뜩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속 없는 찐빵이 맛 없듯이 심예란의 시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생활주변의 상(相)들을  생활주변 그대로 놓여있게 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시혼(詩魂)으로 담궈어 내어 재구성해 하는 데 있다. 이처럼 한 편 한 편의 시가 퍼내는 심예란 시의 울림이 자신의 삶과 주변의 숨결과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말해주는 육화된 정서인 것이다.

  문학작품은 인간의 정신이 빚는 혼의 그릇이다. 그릇의 질감도 중요하며 정신의 인식체계도 중요한 덕목이 된다. 마구 써내는 시들이 난무한데 지양돼야 하며 보편적 정서를 새로운 안목으로 보는 투시력 내지는 사유정신이 깊게 자리해야 한다.

  왜, 한국에서는 미당 서정주시인을 단군 이래 오천년 역사의 한국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하는가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냥 쓴 시가 아니라는데 있다. 대개의 시인들이 미당의 시를 흠모하는데 있어서 신(神)이 들리지 않으면 그렇게 쓸 수 없다고 평가한다. 그만큼 차원을 달리하며 남다른 안목과 타고난 재질이 그를 최고의 시인이게 한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가 미당을 능가할 수 없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자신에게 가장 위대한 스승은 좋은 시작품인 것이다.

 

  (2007년 12월 11일 완성)

 

* 연변시집지「시향만리」(제2호) : 2008년 4월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