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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문예창작대학]시창작 강의자료(2008.9)
아미산월
2008. 9. 1. 04:16
[한중문예창작대학]시창작 강의자료(2008.9)
산정묘지(山頂墓地) 11
조정권
입술의 노래는
흙으로 돌아가지 않으리.
스스로의 영혼을 입술로 불어서
불씨를 일으키는 데 사용했던 입은
흙으로 되돌아가도,
입술의 노래는
大地에 묻히지 않으리.
내가 되돌려 주어야 할 것은
고뇌를 담기 위해 태어난 두 손,
방황을 하기 위해 태어난 두 다리
그리고 땅의 住民임을 표시하는 살,
언젠가는 흙으로 되돌려 주어야 할 이 형벌의 뼈.
아, 아, 암흑의 관을 쓰고 땅을 기어가는 흉한 짐승처럼
고뇌하는 이마와 방황하는 긴 막대기를 지닌
이 형벌받은 살.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되돌려 주어야 할 혀.
하나 혀로서 부른 입술의 노래는
흙으로 돌아가지 않으리.
하나의 나약한 나뭇잎조차 소리없이 떨어지는데도
힘이 필요한 것처럼,
인간에게도
스스로의 영혼을 불어 끄기 위한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오, 밤이 오고 있다.
大地여! 우리들이 달려가고 있다,
아직은 관뚜껑을 닫지 말아다오.
아직은 관뚜껑을 닫지 말아다오.
우리들 모두는
바람 속을 뛰어가는 촛불이다.
아득한 성자
조 오 현
하루라는 오늘
오늘 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영남일보 이춘호 기자님이 제일 좋아한다는 시입니다
나의 抒情詩
서 지 월
열 대여섯 살 무렵부터 나는 열심히 서정시를 써왔습니다. 꽃과 나비, 새들의 하모니며 저녁마다 우러르던 바알간 노을빛에 그리움 같은 걸 묻어두며 누이의 화안한 미소에까지 나의 서정시는 번져갔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시는 곱다는 것으로, 크레용을 가지고 좋아하는 계통의 색깔을 골라 도화지 위에 박박 그려내는 그런 그림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해에는 비가 많이 내렸고 태양에 흑점이 많이 생긴 해로서는 농작물 피해 뿐만 아니라 눈이 산더미같이 와 억수로 추운 겨울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은 잔칫날 파장처럼 술렁거리며 저마다 생활의 짐을 꾸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변소에 가 앉아 똥을 누면서 생각하듯 서정시는 계속 써 온 것입니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의 그 휴식의 표정을 보고 삶의 한순간이 애처로웁듯 초췌하다는 것을 밥을 먹으면서 힐끔힐끔 알아차릴 수 있었고 내가 그리던 사랑 나무의 핑크빛 사랑열매도 저문 강언덕 위로 낙하할 즈음, 나는 세상을 근심처럼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사물의 형상이라는 게 어두운 쪽은 잘 보이지 않듯이 용케 명암을 따지는 세상을 맞게 되었고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숨가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버릇은 서정시를 쓰는 그것만은 휙 뿌리쳐버리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베에토벤의 심포니가 더욱 강렬하게 뇌리를 때리었고 나자빠진 영혼처럼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흰 백합화를 흔들며 지나가던 소녀 꽃장수마저 거리에서 사라져버린지 오래 바람도 집 잃어 우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내가 그만한 무지개 색깔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형편이라서 늘 눈물나고, 어릴 때는 노란 은행잎 주워 세면 마냥 즐겁기만 하여 더 가질려고 떼를 써 줍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신 다른 것에 눈을 흘리는 정황이 되었으니 때가 묻고 구성이 잘 되질 않았습니다. 비오는 날의 장단같은 것이 어딘가 맞지 않는 슬픔 느끼고 저무는 처마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정녕코 오늘에 와서 이제껏 꽃이나 별이나 사물에서 보던 나의 서정시가 도시를 꽉 메운 빌딩 속 어딘가에 숨어, 눈 딱 감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하고 몇 번을 외쳐봐도 눈 떠보면 흰구름 한 송이 피어오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나의 서정시는 바람 구르는 새벽풀밭 잃고 새들이 날아와 야영할 숲마저 잃어버린 채, 세상의 마지막 광장 쪽으로 우리가 쓸쓸히 발 맞추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영남일보 이춘호 기자님이 제일 좋아한다는 서지월선생님 시입니다.
서지월선생님 초기시인데 늘 생각난다고 한다는 시입니다.
선생님도 기억 못하고 있었다 합니다,
여러분들, 이런 시가 있는 줄 몰랐었지죠? /임해
######찔레꽃,빗방울 시 비교
6월,찔레꽃을 보며
조 철 호
태백산 자락
아니 화전민의 따비밭 어디
또는 돌무덤 부근
뙤약볕 아래, 아니 땅거미 더불어
허덜허덜 옷이랑 살이랑 마음이랑
아니 가진 것 모두 찢기어
핏물 뚝뚝 흘리던 병사며 피난민이며
아니 사돈에 팔촌에 얽히고 설킨
우리 모습 그대로
저리 무성케 피었구나
흰 찔레꽃 더미
의혈도 분노도 사무침도 이젠 사위어
희게 웃는구나
주검도 미소가 있고나
오, 혼백도 하늘에 오르려면
저처럼 정갈한 모습이어야 하는고나
찔레꽃 타령
서 지 월
임아,
백 고무신 벗어두고 간 임아
하얀 찔레꽃 수북이 피어서
오늘같이 서러운 날이면
온 몸에 찔레가시 바르고
나도야 남풍따라 가서는
돌아오지 않을까부다
아아,
장독간에 숨겨둔 얼레빗 마저 꺼내
머리 빗고서
그 더운 머리털 날리는 구름따라
나도야 정처없이 떠날까부다
빗방울
장 수 남
창문을 열면
들개 짖는 사막의 밤
갈색 하늘 모래알들의 신음 소리
너는 듣고 있는가.
세상 어려움 잊고
무지갯빛 계절의 소망은
아름다운 세상 너는 꿈 이었을까
진실은 모를 거야.
잎 진 가을 밤
물줄기 무거워 지면
허공 무너져 검은 아스팔트 위에
빗방울 튕겨나간다.
빗방울
서 지 월
유리창에 빗방울 흘러내릴 때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하고 있었는지
유리창에 빗방울이
하나 둘도 아니고
여럿이 모여
건너다 보이는 풀밭이나 강이
얼룩져 보이던 때
하나 둘도 아닌 여러 빗방울이
안을 들여다 보며
들어오려고 안간힘 쓰던 때
그러다 힘없이 무너져내린
그 낱낱의 몸들
당신이 부재중이던 그때
#####젊은 시인선
붉은 고추
정 이 랑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이 많아
장독대 대소쿠리에 몸을 내맡긴다
햇볕이 눌러대는 시간 속에서
터져나갈 듯 비틀어지는 심장
한때, 구름 사이 끼어들어 바람의 길
확인하고 돌아오는 새를 보며 부지런히
바다 쪽으로 생각을 열어놓던 날도 있었지
지금은 애써 묻고 싶지 않다
마지막 올려다보는 하늘 끝 날아가는 청둥오리떼
어디로 가려 하는지
머리채 흔들며 가로질러 가던 젊은 날의
강물 같은 꿈 이제 누워 잠들거라
흙속 발 담그고 펄떡거리던 나뭇가지들
그 곁에 돌아갈 수 없구나
바람이 누워 있는 풀숲 근처의 쓰르라미 울음소리
희미해지는데, 나의 전부는
먼지처럼 가벼워질 수 없을까
다슬기처럼 달라붙은 밤하늘의 별 헤아릴 때
비로소 나의 온몸은 불덩이 같이 달아올랐다
<약력>
▲1969년 경북 의성 출생. 한국여성문학상 수상.
▲1997년『문학사상』신인발굴 시가 당선 등단.「대산문화재단 문학인 창작지원금」수혜시인으로 선정
꽃나무와 물고기
이 채 운
강변에 한 그루의 꽃나무가 서 있다
꽃나무가 무슨 생각에선지 뚜벅뚜벅 물가로 걸어간다
물풀 헤집으며 한 마리의 물고기가 미끄러진다
손짓하는 꽃나무를 알아보고 몸통을 튼다
꽃나무가 물고기에게 말을 건넨다
부끄러운 물고기는 이내 꽃그늘에 아래 숨어버린다
꽃나무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물고기를 찾는다
어디에도 물고기들의 합창이 들려오지 않는다
물고기는 정말 물 속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꽃나무가 강심을 보려고 발돋움한다
꽃송이들이 흥에 들떠 와글거리고
그들이 함빡 토해낸 말들이 공중에서 부서진다
무색해진 꽃나무가 앞발로 툭,흙무더기를 걷어찬다
물고기는 천천히 깊고 푸른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새어드는 햇빛알갱이 굴리며 부드럽게 몸 흔들면
꽃나무는 한번 더 온힘을 모아 꽃송이들 활짝 터뜨린다
어느 날,물고기는 자신의 몸 속에 환한 꽃나무가
자라고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란다 꽃나무의 지친
가슴에도 낯익은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부벼온다
*영남일보 신춘문예 및 `신라문학대상’ 대상 당선
포도나무전설
이 채 운
그대, 로동에 지친 어깨 거느리고 따가운 뙤약볕 가로질러 돌아올 때 문득 과육내음 묻어나는 휴식의 자리 그려보았는지요 서늘한 그늘 짜며 도는 넝쿨손 손짓하는 줄대우로 빤하게 보이는 하늘 훔치며 숨어있는 포도송이, 우리 어릴적 신나게 뛰여놀던 운동장만큼 크고 둥근 포도알의 우주속을 들어가보았는지요 어디라도 뿌리 내릴 까만 씨앗들 헤염치는 달디단 과즙의 바다, 출렁이는 파도에 몸 뒤척이며 자라나는 해초 돌무지에 앉아 조을던 고추잠자리 태양의 살점 베여먹고 빙빙도는 륜무, 그 서슬에 한바탕 취기의 혈관 부풀리는 포도나무 산들바람 이끄는 대로 들판을 질러온 젊은 남녀, 청보도 이파리에 얼굴덮고 숨박곡질하는 사랑 해보았나요? 누구든 오셔요 흐르는 땀 식히며 졸리운 잠속으로 빠져들면 주렁주렁 포도알들 홍분의 속살 돋우며 해 지도록 대지의 자장가 불러줄테니까요
상추쌈
이 채 운
이글거리는 대낮의 갈증과 찌부덩한 기분
갖고 싶어 움키고 싶은 것들까지 척척 포개 얹어
온 세상 푸르른 마음의 살로 포옥 싸서
한입 그득한 달관의 맛을 만나고 싶다
짙은 향기가 시든 입술 열어주고
환한 목구멍으로 노래가 흘러 나오게 한다면
흙살 비집고 나온 눈과 귀,두런거리는 물소리와
공기의 춤이 어울린 정신의 꼭대기로 올라간다면
어린 시절 나는 짠 온갖 생활의 감각들
뒤섞여 독이 되는 찌꺼기조차 오래삭힌 된장처럼
부드럽고 상큼하게 千手大悲의 큰 손바닥 내밀 듯
크게 거두어 감싼다면,
얼마나 감칠 맛 나는 세상 될까
<약력>
▲1965년 성주 출생. 본명 이향희.
▲영남대학교 철학과 졸업.
▲대동일보 여성문예상 최우수상 수상.
▲청구문화제 문예작품공모 시 당선.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신라문학대상 시 대상 당선.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대구시인학교 '사림시' 동인.
꽃나무와 물고기
이 채 운
강변에 한 그루의 꽃나무가 서 있다
꽃나무가 무슨 생각에선지 뚜벅뚜벅 물가로 걸어간다
물풀 헤집으며 한 마리의 물고기가 미끄러진다
손짓하는 꽃나무를 알아보고 몸통을 튼다
꽃나무가 물고기에게 말을 건넨다
부끄러운 물고기는 이내 꽃그늘에 아래 숨어버린다
꽃나무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물고기를 찾는다
어디에도 물고기들의 합창이 들려오지 않는다
물고기는 정말 물 속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꽃나무가 강심을 보려고 발돋움한다
꽃송이들이 흥에 들떠 와글거리고
그들이 함빡 토해낸 말들이 공중에서 부서진다
무색해진 꽃나무가 앞발로 툭,흙무더기를 걷어찬다
물고기는 천천히 깊고 푸른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새어드는 햇빛알갱이 굴리며 부드럽게 몸 흔들면
꽃나무는 한번 더 온힘을 모아 꽃송이들 활짝 터뜨린다
어느 날,물고기는 자신의 몸 속에 환한 꽃나무가
자라고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란다 꽃나무의 지친
가슴에도 낯익은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부벼온다
돌탑
우 이 정
산길 오르던 바람도 잠시 쉬어갑니다
갓바위 오르는 발길들이 분주합니다
웅크리고 앉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는
돌탑 위로 소망하나 더해질 때마다
햇살은 구름사이로 얼굴 내밀고
풀잎은 뒷짐지고 서성거립니다
팔공산 갓바위 오르는 길손들
이마 위에 솟는 땀방울 쳐다보며
돌탑은 구름인양 주저앉습니다
나는 잠시 두손모아 합장하며
흘러가는 구름 불러모읍니다
피안(彼岸)
이 은 림
저 집들, 언제 강을 건너
저렇게 무덤처럼 웅크리고 앉았나
아무도 몰래 건너 가버린 저 산들은
어떻게 다시 또 데려오나
젖은 길만 골라 가는 낡은 나룻배가
산과
나무들과 꽃들,
풀밭을 다 실어 나른 건가
남아있던 불빛마저 참방참방 뛰어서
저 편으로 가는구나
환하다,
내가 없는 저곳
유리꽃병
이 은 림
강물은 아무도 몰래 흘러서
이곳까지 왔다 가는 모양입니다
꽃병속에 숨어든 물빛 좀 보십시오
물빛이 어루만지는
꽃들의 표정은 또 어떻습니까
사흘째 잠겨있는 지친 발목
핥으며 내려오는 향기로운 말들
어두워지면 달을 매단 달빛 끌고와
한가닥씩 나눠주는 강물의 손길이
쉴새없이 부풀리는 꽃들의 모습
보이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강물은 제 갈길 가다말고
창밖만 내다보며 쪼그려 앉은
저 유리꽃병에게 살며시 왔다가
싱싱한 피 한모금 떼여주고
가버리는 모양입니다
[이은림시인 소개 및 약력]
이은림시인은 1973년 경남 양산 출생으로
경남양산종합고등학교 3학년때 해변시인학교에 참여했다가 서지월시인을 만나
졸업 후 바로 대구시인학교에서 장장 6년간 먼 거리인 경남 양산 물금리에서
매주 목요일 대구시인학교 시칭작강좌에 빠짐없이 참여해 몰두하면서
1996년 여성신문사 주최 제7회 ‘여성문학상’ 과 강원일보 주최 김유정문예작품공모
부산일보 여성문예상, 국제신문 여성문학상, 신라문학대상, 그리고
1997년 제6회 영남일보 신춘문예 영일문학상에 시가 각각 당선되었으며
서울예대문예창작과 졸업후 바로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다시 시 당선 되어
확고하게 자리를 굳히며 등단했다.
본명은 이은영인데 스승인 서지월시인이
'이은림'이라는 필명을 지어 주었으며. 이은림시인은
닉네임 또한 '소서노'인 만큼 강인한 시정신을 소유한 귀재로 알려졌는데
평소 노벨문학상을 받는게 자신의 문학적 소망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현재 대구시인협회 회원 및 대구시인학교 <사림시>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년전에 결혼을 했다.
이번 시집 『 태양중독자 』는 <문예중앙 젊은 시선18>로 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는데
1997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이후 데뷔한지 근 10년 만에 펴내는 첫시집으로
시인이 공들인 흔적인 역력한 작품들로 총 50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실려 있다.
단단하면서도 독창적인 감수성과 빛나는 상상력으로 버무려진 신인다운 패기가
뛰어나다는 평가다.
[이은림시인 약력]
ㅁ1973년 경남 양산 출생. 본명 이은영
ㅁ1996년여성신문사 주최 제7회 ‘여성문학상’ 시 당선.
ㅁ강원일보 주최 김유정문예작품공모 시 당선.
ㅁ부산일보 여성문예상 시 당선.
ㅁ국제신문 여성문학상 시 당선.
ㅁ신라문학대상 시 당선.
ㅁ1997년 제6회 영남일보 신춘문예 영일문학상 시 당선.
ㅁ1997년 제6회 영남일보 신춘문예 영일문학상 시 당선
ㅁ2001년『작가세계』 신인상 시 당선.
ㅁ서울예대문예창작과 졸업.
ㅁ현재 대구시인학교 <사림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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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라고 부르지마
최 문 자
들판 옥수수밭에 나가
옥수수 하나 붙잡고
옥수수 하나 알 듯
나를 안다고
나를 옥수수라고 부르지마.
옥수수 헝클어진 술다발
서로 스쳐갈 때
스쳐간다고 해서
여러 겹 옥수수 마음이
우두둑 씹히지 않는 것처럼
저 시퍼런 밭에 나가 앉은
배고 또 배도 시원치 않은 자궁들.
혼자 떨며 수태하는 자궁들
나도 옥수수도
모두 알 수 없는 슬픈 아이를 배고
시퍼렇게 크는 태아가 있어.
들판
옥수수밭 옆에 차를 세우고
쉬운 이름 부르듯
나를 옥수수라고 부르지 마.
옥수수 하나 붙잡고
큰 고통 지워버리고
그냥 옥수수라고 부르지마.
아무 소리 나지 않지만
수만 평에 있는 옥수수 그림자 속에
아직 나오지 않은 옥수수의 말이 있어.
다리
이성선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사과밭을 지나며 ..
나희덕
가을엔 나비조차 낮게 나는가
내려놓을 것이 있다는 듯
부려야 할 몸이 무겁다는 듯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매를 달았던 사과나무,
열매를 다 내려놓고 난 뒤에도
그 휘어진 빈 가지는 펴지지 않는다
아직 짊어질 게 남았다는 듯
그에겐 허공이, 열매의 자리마다 비어 있는
허공의 열매보다 더 무거울 것이다
빈 가지에 잠시 나비가 앉았다 날아간다
무슨 축복처럼 눈앞이 환해진다
아, 네가, 네가, 어디선가 나를 내려놓았구나
그렇지 않다면 이토록
사과나무 그늘이 환해질 수 있을까
꿰맨 자국 하나 없는 나비의 날개보다
오늘은 내 백결(百結)의 옷이 한결 가볍겠구나
아주 뒤늦게 툭, 떨어지는 사과 한 알
사과 한 알을 내려 놓는데
오년이 걸렸다.
옹관(甕棺) 1
정 끝 별
모든 길은 항아리를 추억한다
해묵은 항아리에 세상 한 짐 풀면
해가 뜨고 별 흐르고 비가 내리는 동안
흙이 되고 길이 되고
얼마간 뜨거운 꽃잎
또 하루처럼 열리고 잠겨
문득 매듭처럼 덫이 될 때
한 몸 딱 들어맞게 숨겨줄
그 항아리가 내 어미였다면,
길은 다시 구부러져 내 몸으로 들어오리라
둥근 길
길의 입에 숨을 불어넣고
내가 길의 어미가 될 것이니,
내 안에 길이 있다
내가 가득찬 항아리다
밀물
정 끝 별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벌거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上弦
나 희 덕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때로 그녀도 밝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가
다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上弦」전문 (『어두워 진다는 것』창작과 비평)
나희덕 씨의 시 「上弦」에 대한 이시영 시인의 촌평을 들어 본다.
<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무척 아름다운 시다. 이처럼 선명하게 아름다운 시에는
<해설>이 필요없는 법! 능선 위에 아슬히 걸터앉았다가 붉어진 얼굴로 사라져가는
달의 운행을 가만히 지켜볼 뿐.
이광호 교수의 글을 보기로 한다. 이 글도 2001년 8월 중앙일보에 실려 있다.
이 낯선 발견의 시학은 시 「上弦」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시에서 충만의 순간을 향해
움직이는 여성성으로서의 <上弦>의 이미지는 천상이 아닌 지상에서 자기 의미를 벗는다.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 보았다>는 고백에서,
그 <훔쳐보기>야말로 상투성과 금기를 넘어서는 시적발견의 다른 이름이다. 그 발견 다음에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훔쳐보기가 사물들의 꿈과 상처에 관한 예견으로 전환된 것이다. 시인의 발견을 따라가면,
저기 마음을 들킨 사물들처럼, 우리 상처도 깊어져 환해질까.
#####서정주 시 특선
자화상(自畵像)
서 정 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서풍부(西風賦)
서정주
서녘에서 부러오는 바람속에는
오갈피 향나무와
개가죽 방구와
나의 여자의 열두발 상무상무
노루야 암노루야 홰냥노루야
늬발톱에 상채기가
퉁수ㅅ소리와
서서 우는 눈먼 사람
자는 관세음.
서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속에는
한바다의 정신ㅅ병과
징역시간과
바다
서 정 주
귀기우려도 있는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우에 무수한 밤이 往來하나
길은 恒時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아- 반딪불만한 등불 하나도 없이
우름에 젖은얼굴을 온전한 어둠속에 숨기어가지고……너는,
無言의 海心에 홀로 타오르는
한낫 꽃같은 心臟으로 沈沒하라.
아- 스스로히 푸르른 情熱에 넘처
둥그란 하눌을 이고 웅얼거리는 바다,
바다의깊이우에
네구멍 뚤린 피리를 불고…… 청년아.
애비를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兄弟와 親戚과 동모를 잊어버려,
마지막 네 게집을 잊어버려,
아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 아니 沈沒하라. 沈沒하라. 沈沒하라 !
오- 어지러운 心臟의 무게우에 풀닢처럼 흣날리는 머리칼을 달고
이리도 괴로운나는 어찌 끝끝내 바다에 그득해야 하는가.
눈뜨라. 사랑하는 눈을뜨라…… 청년아,
산 바다의 어느 東西南北으로도
밤과 피에젖은 國土가 있다.
아라스카로 가라!
아라비아로 가라!
아메리카로 가라!
아푸리카로 가라!
눈 오시는 날
서 정 주
내 戀人은 잠든지 오래다.
아마 한 千年쯤 전에......
그는 어디에서 자고 있는지
그 꿈의 빛만을 나한테 보낸다.
분홍, 분홍, 연분홍, 분홍,
그 봄 꿈의 진달래꽃 빛깔들.
다홍, 다홍, 또 느티나무 빛,
짙은 여름 꿈의 소리나는 빛깔들.
그리고 인제는 눈이 오누나......
눈은 와서 내리 쌓이고,
우리는 제마다 뿔뿔이 혼자인데
아 내곁에 누어있는 여자여.
네 손톱 속에 떠오르는 초생달에
내 戀人의 꿈은 또 한번 비친다.
꽃
서정주
가신이들의 헐덕이든 숨결로
곱게 곱게 씻기운 꽃이 피였다.
흐트러진 머리털 그냥 그대로,
그 몸ㅅ짓 그 음성 그냥 그대로,
옛사람의 노래는 여기 있어라.
오-- 그 기름묻은 머리ㅅ박 낱낱이 더워
땀 흘리고 간 옛사람들의
노래ㅅ소리는 하늘우에 있어라.
쉬여 가자 벗이여 쉬여서 가자
여기 새로 핀 크낙한 꽃 그늘에
벗이여 우리도 쉬여서 가자
맞나는 샘물마닥 목을추기며
이끼낀 바위ㅅ돌에 택을 고이고
자칫하면 다시못볼 하눌을 보자.
金가락지 구멍
서정주
이 븨인 金가락지 구멍에
끼었던 손까락은
이 구멍에다가 그녀 바다를 조여 끼어 두었었지만
그것은 구름되어 하늘로 날라 가고----.
이 븨인 金가락지 구멍에
끼었던 손까락은
한 하늘의 구름을 또 조여서 끼었었지만
그것은 또 우는 비 되어 땅으로 내려지고----.
이 븨인 金가락지 구멍에
끼었던 손까락은
인제는 그 어지러운 머리골치를 거두어
누군가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것 까진 알겠지만
누구냐
그 허리에 찬 주머니 속의 그녀 어질머리로
梧桐꽃 내음새 나는 피리 소리를
연거푸 이 구멍으로 불어 넣어 보내고만 있는 너는?
부활(復活)
서정주
내 너를 찾어왔다 ---- 臾娜. 너참 내앞에 많이있구나 내가 혼자서 鐘路를 거러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오는구나. 새벽닭이 울때마닥 보고싶었다 ---- 내 부르는소리 귓가에 들리드냐. 臾娜. 이것이 멫萬時間만이냐.
그날 꽃喪卓 山넘어서 간다음 내눈동자속에는 빈하눌만 남드니, 매만저볼 머릿카락 하나 머리카랏 하나 없드니, 비만 자꾸오고 ---- 燭불밖에 부흥이 우는 돌門을열고가면 江물은 또 멫천린지. 한번가선 소식없든 그 어려운 住所에서 너무슨 무지개로 네려왔느냐. 鐘路네거리에 뿌우여니 흐터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볓에 오는애들. 그중에서도 열아홉살쯤 스무살쯤 되는애들. 그들의눈망울속에, 핏대에, 가슴속에 드러앉어 臾娜 ! 臾娜 !臾娜 ! 너 인제 모두다 내앞에 오는구나
도화도화(桃花桃花)
서정주
푸른 나무그늘의 네거름길우에서
내가 붉으스럼한 얼굴을하고
앞을볼때는 앞을볼떄는
내 裸體의 에레미야書
毘盧峰上의 强姦事件들
미친하눌에서는
미친 오픠이리아의 노래소리 들리고
원수여. 너를 찾어 가는길의
쬐그만 이休息
나의微熱을 가리우는 구름이있어
새파라니 새파라니 흘러가다가
해와함께 저므러서 네집에 들리리라.
행진곡(行進曲)
서정주
잔치는 끝났더라.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알간 불 사르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걷으면 저무는 하늘.
일어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금씩 취해 가지고
우리 모두 다 돌아가는 사람들.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멀리 서 있는 바닷물에선
난타하여 떨어지는 나의 종소리.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나팔꽃
송수권
바지랑대 끝 더는 꼬일 것이 없어서 끝이다 끝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나팔꽃 줄기는 허공에 두 뼘은 더 자라서
꼬여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아침 구름 두어 점, 이슬 몇 방울
더 움직이는 바지랑대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덩굴손까지 흘러나와
허공을 감아쥐고 바지랑대를 찾고 있을 것이다.
이젠 포기하고 되돌아올 때도 되었거니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가냘픈 줄기에 두세 개의 종까지 매어달고는
아침 하늘에다 은은한 종소리를 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젠 더 꼬일 것이 없다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우리의 아픔도 더 한 번 길게 꼬여서 푸른 종소리는 나는 법일까
시골길 또는 술통
송수권
자전거 짐받이에서 술통들이 뛰고 있다
풀 비린내가 바퀴살을 돌린다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
자갈들이 한 치씩 뛰어 술통을 넘는다
술통을 넘어 풀밭에 떨어진다
시골길이 술을 마신다
비틀거린다
저 주막집까지 뛰는 술통들의 즐거움
주모가 나와 섰다
술통들이 뛰어내린다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여승(女僧)
송수권
어느 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
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
나는 하루종일 방안에 누워서 고뿔을 앓았다.
문을 열면 도진다 하여 손가락을 침을 발라가며
장지문에 구멍을 뚫어
토방 아래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 고랑이 깊은 음색과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집 처마끝에 걸린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너무 애지고 막막하여져서 사립을 벗어나
먼발치로 바리때를 든 여승의 뒤를 따라 돌며
동구밖까지 나섰다
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보고
우는 듯 웃는 듯 얼굴상을 지었다
(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
나는 무엇을 잘못하여 들킨 사람처럼 마주서서 합장을 하고
오던 길로 뒤돌아 뛰어오며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에
마구 흙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여승이 우리들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절간 속에
산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따금 꿈속에선
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여승을 만나곤 한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
우리 나라 풀이름 외기
송수권
봄날에 날풀들 돋아오니 눈물난다
쇠뜨기풀 진드기풀 말똥가리풀 여우각시풀
이 나라에 참으로 풀들의 이름은 많다
쑥부쟁이 엉겅퀴 달개비 개망초 냉이 족두리꽃
물곶이 앉은뱅이 도둑놈각시풀들
조선총독부 식물도감을 펼치니
救荒食의 풀들만도 백오십여 가지다
쌀 일천만 섬을 긁어가도 끄떡없는 민족이라고
그것이 고려인의 기질이라고
나마무라 이시이가 서문에서 점잖게 게다짝을 끌고 나온다
나는 실제로 어렸을 때 보리 등겨에 土麵국수를 말아먹고
북어처럼 배를 내밀고 죽은 늙은이를
마을 앞 당각에 내다버린 것을 본 일이 있었다
햄이나 치이즈 버터나 인스턴트 식품이면
뭐나 줄줄이 외워대는 어린놈에게
어서 방학이 왔으면 싶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센인바리(千人針)를 받으러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았듯이
나 또한 이 나라 산천을 떠돌며
어린것의 식물 표본을 도와주고 싶다.
쇠똥가리풀 진드기풀 말똥가리풀 여우각시풀들
이 나라에 참으로 풀들의 이름은 많다
쑥부쟁이 엉겅퀴 달개비 개망초 냉이 족두리꽃
물곶이 앉은뱅이 도둑놈각시풀들.
적막한 바닷가
송수권
더러는 비워놓고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
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밀물을 쳐보내듯이
갈밭머리 해 어스름녘
마른 물꼬를 치려는지 돌아갈 줄 모르는
한 마리 해오라기처럼
먼 산 바래서서
아, 우리들의 적막한 마음도
그리움으로 빛날 때까지는
또는 바삐바삐 서녘 하늘을 깨워가는
갈바람 소리에
우리 으스러지도록 온몸을 태우며
마지막 이 바닷가에서
캄캄하게 저물 일이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서정주시인에 의해 당선된 시
즐거운 편지
황 동 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
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
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
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
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천은사운(泉隱寺韻)
고은
그이들끼리
살데.
골짜구니 아래도 그 위에도
그들의 얼얼이 떠서
바람으로 들리데.
그이들은
밤 솔바람소리,
바위보아
비인 산 허리.
가을이 오데.
바위를 골라
나앉아 우는 추녀 끝
뜰에 떨어지는 풍경소리에,
그이들끼리
살데.
그이들은 늙데.
돌아와 한번 잊은제
도로 가고 싶은 그이들의 얼 바람 진
산 허리.
그이들은
살데.
<박재삼 시 특선>
맑은 하늘 한복판
박재삼
맑은 하늘 한복판
새소리의 무늬도 놓쳐버리고
한 처녀를 사랑할 힘도 잃어버리고
너댓 살짜리 아기의
발 뻗는 투정으로 울고 싶은 나를
천만뜻밖에도 무기징역을 때려
이만치 떼어 놓고
환장할 듯 환장할 듯
햇빛이 흐르나니,
바람이 흐르나니.
▷춘향이 마음抄
박재삼
1. 수정가
집을 치면, 정화수 잔잔한 우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신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평상의, 갈앉은 뜨락의, 물내음애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래. 서방님은 바람 같단들 어느때고 바람은 어려올 따름, 그 옆에 순순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이 마음이 아니었을래.
하루에 몇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때마다 일렁여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 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진실로 우리가 만든 산신령은 그 어디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의 만리같은 물살을 굽어 보는 춘향은 바람에 어울린 수창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2. 바람 그림자를
어지간히 구성진 노래 끝에도 눈물나지 않던 것이 문득 머언 들판을 서성이는 구름 글미자에 눈물져 올 줄이야.
사람들아 사람들아
우리 마음 그림자는, 드디어 마음에도
등을 넘어 내려오는 눈물이 아니란 말가.
문득 이도령이 돌아오자, 참 가당찮은
세월을 밀어버리어, 천지에 넘치는 바람
의 화안한 그림자를 춘향은 눈물 속에 아로새겨 보았을 줄이야.
3. 매미 울음에
우리 마음을 비추는
한낮은 뒷숲에서 매미가 우네
그 소리도 가지가지의 매미 울음,
머언 어린날은 구름을 보아 마음대로
꽃이 되기도하고 친한 이웃아이 얼굴이 도기도 하던 것을,
오늘은 귀를 뜨고 마음을 뜨고, 아아
임의 말소리, 미더운 발소리, 또는 대님
푸는 소리로 까지 어여뻐 그려낼 수 있는
4. 화상보
참말이다. 춘향이 일편단심을 생각해 보아라. 원이라면, 꿈속엔 훌륭한 꽃동산이온전히 제것이 되었을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꾸는 슬기 다음에는 마치 저 하늘의 달에나 비길 것인가, 한결같이 그 둘레를 거닐어 제자리 돌아오는 일이나 맘대로 하였을 그것이다. 아니라면, 그 많은 새벽마다를 사랑치고 그렇게 같은 때를 잠깨일 수는 도무지 없는 일이란 말이다.
<시조>내 사랑은
박재삼
한빛 황토(黃土)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 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萬 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 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춰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주리라
+++++
ㅁ박재삼-시창작의 비법은 없다
시창작의 비법은 없다
-문학체험을 많이 해라
-사고를 깊고 풍부하게 하라
-3. 쓰고 또 써라
++++++++++
산정묘지(山頂墓地) 11
조정권
입술의 노래는
흙으로 돌아가지 않으리.
스스로의 영혼을 입술로 불어서
불씨를 일으키는 데 사용했던 입은
흙으로 되돌아가도,
입술의 노래는
大地에 묻히지 않으리.
내가 되돌려 주어야 할 것은
고뇌를 담기 위해 태어난 두 손,
방황을 하기 위해 태어난 두 다리
그리고 땅의 住民임을 표시하는 살,
언젠가는 흙으로 되돌려 주어야 할 이 형벌의 뼈.
아, 아, 암흑의 관을 쓰고 땅을 기어가는 흉한 짐승처럼
고뇌하는 이마와 방황하는 긴 막대기를 지닌
이 형벌받은 살.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되돌려 주어야 할 혀.
하나 혀로서 부른 입술의 노래는
흙으로 돌아가지 않으리.
하나의 나약한 나뭇잎조차 소리없이 떨어지는데도
힘이 필요한 것처럼,
인간에게도
스스로의 영혼을 불어 끄기 위한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오, 밤이 오고 있다.
大地여! 우리들이 달려가고 있다,
아직은 관뚜껑을 닫지 말아다오.
아직은 관뚜껑을 닫지 말아다오.
우리들 모두는
바람 속을 뛰어가는 촛불이다.
아득한 성자
조 오 현
하루라는 오늘
오늘 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영남일보 이춘호 기자님이 제일 좋아한다는 시입니다
나의 抒情詩
서 지 월
열 대여섯 살 무렵부터 나는 열심히 서정시를 써왔습니다. 꽃과 나비, 새들의 하모니며 저녁마다 우러르던 바알간 노을빛에 그리움 같은 걸 묻어두며 누이의 화안한 미소에까지 나의 서정시는 번져갔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시는 곱다는 것으로, 크레용을 가지고 좋아하는 계통의 색깔을 골라 도화지 위에 박박 그려내는 그런 그림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해에는 비가 많이 내렸고 태양에 흑점이 많이 생긴 해로서는 농작물 피해 뿐만 아니라 눈이 산더미같이 와 억수로 추운 겨울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은 잔칫날 파장처럼 술렁거리며 저마다 생활의 짐을 꾸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변소에 가 앉아 똥을 누면서 생각하듯 서정시는 계속 써 온 것입니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의 그 휴식의 표정을 보고 삶의 한순간이 애처로웁듯 초췌하다는 것을 밥을 먹으면서 힐끔힐끔 알아차릴 수 있었고 내가 그리던 사랑 나무의 핑크빛 사랑열매도 저문 강언덕 위로 낙하할 즈음, 나는 세상을 근심처럼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사물의 형상이라는 게 어두운 쪽은 잘 보이지 않듯이 용케 명암을 따지는 세상을 맞게 되었고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숨가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버릇은 서정시를 쓰는 그것만은 휙 뿌리쳐버리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베에토벤의 심포니가 더욱 강렬하게 뇌리를 때리었고 나자빠진 영혼처럼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흰 백합화를 흔들며 지나가던 소녀 꽃장수마저 거리에서 사라져버린지 오래 바람도 집 잃어 우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내가 그만한 무지개 색깔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형편이라서 늘 눈물나고, 어릴 때는 노란 은행잎 주워 세면 마냥 즐겁기만 하여 더 가질려고 떼를 써 줍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신 다른 것에 눈을 흘리는 정황이 되었으니 때가 묻고 구성이 잘 되질 않았습니다. 비오는 날의 장단같은 것이 어딘가 맞지 않는 슬픔 느끼고 저무는 처마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정녕코 오늘에 와서 이제껏 꽃이나 별이나 사물에서 보던 나의 서정시가 도시를 꽉 메운 빌딩 속 어딘가에 숨어, 눈 딱 감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하고 몇 번을 외쳐봐도 눈 떠보면 흰구름 한 송이 피어오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나의 서정시는 바람 구르는 새벽풀밭 잃고 새들이 날아와 야영할 숲마저 잃어버린 채, 세상의 마지막 광장 쪽으로 우리가 쓸쓸히 발 맞추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영남일보 이춘호 기자님이 제일 좋아한다는 서지월선생님 시입니다.
서지월선생님 초기시인데 늘 생각난다고 한다는 시입니다.
선생님도 기억 못하고 있었다 합니다,
여러분들, 이런 시가 있는 줄 몰랐었지죠? /임해
######찔레꽃,빗방울 시 비교
6월,찔레꽃을 보며
조 철 호
태백산 자락
아니 화전민의 따비밭 어디
또는 돌무덤 부근
뙤약볕 아래, 아니 땅거미 더불어
허덜허덜 옷이랑 살이랑 마음이랑
아니 가진 것 모두 찢기어
핏물 뚝뚝 흘리던 병사며 피난민이며
아니 사돈에 팔촌에 얽히고 설킨
우리 모습 그대로
저리 무성케 피었구나
흰 찔레꽃 더미
의혈도 분노도 사무침도 이젠 사위어
희게 웃는구나
주검도 미소가 있고나
오, 혼백도 하늘에 오르려면
저처럼 정갈한 모습이어야 하는고나
찔레꽃 타령
서 지 월
임아,
백 고무신 벗어두고 간 임아
하얀 찔레꽃 수북이 피어서
오늘같이 서러운 날이면
온 몸에 찔레가시 바르고
나도야 남풍따라 가서는
돌아오지 않을까부다
아아,
장독간에 숨겨둔 얼레빗 마저 꺼내
머리 빗고서
그 더운 머리털 날리는 구름따라
나도야 정처없이 떠날까부다
빗방울
장 수 남
창문을 열면
들개 짖는 사막의 밤
갈색 하늘 모래알들의 신음 소리
너는 듣고 있는가.
세상 어려움 잊고
무지갯빛 계절의 소망은
아름다운 세상 너는 꿈 이었을까
진실은 모를 거야.
잎 진 가을 밤
물줄기 무거워 지면
허공 무너져 검은 아스팔트 위에
빗방울 튕겨나간다.
빗방울
서 지 월
유리창에 빗방울 흘러내릴 때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하고 있었는지
유리창에 빗방울이
하나 둘도 아니고
여럿이 모여
건너다 보이는 풀밭이나 강이
얼룩져 보이던 때
하나 둘도 아닌 여러 빗방울이
안을 들여다 보며
들어오려고 안간힘 쓰던 때
그러다 힘없이 무너져내린
그 낱낱의 몸들
당신이 부재중이던 그때
#####젊은 시인선
붉은 고추
정 이 랑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이 많아
장독대 대소쿠리에 몸을 내맡긴다
햇볕이 눌러대는 시간 속에서
터져나갈 듯 비틀어지는 심장
한때, 구름 사이 끼어들어 바람의 길
확인하고 돌아오는 새를 보며 부지런히
바다 쪽으로 생각을 열어놓던 날도 있었지
지금은 애써 묻고 싶지 않다
마지막 올려다보는 하늘 끝 날아가는 청둥오리떼
어디로 가려 하는지
머리채 흔들며 가로질러 가던 젊은 날의
강물 같은 꿈 이제 누워 잠들거라
흙속 발 담그고 펄떡거리던 나뭇가지들
그 곁에 돌아갈 수 없구나
바람이 누워 있는 풀숲 근처의 쓰르라미 울음소리
희미해지는데, 나의 전부는
먼지처럼 가벼워질 수 없을까
다슬기처럼 달라붙은 밤하늘의 별 헤아릴 때
비로소 나의 온몸은 불덩이 같이 달아올랐다
<약력>
▲1969년 경북 의성 출생. 한국여성문학상 수상.
▲1997년『문학사상』신인발굴 시가 당선 등단.「대산문화재단 문학인 창작지원금」수혜시인으로 선정
꽃나무와 물고기
이 채 운
강변에 한 그루의 꽃나무가 서 있다
꽃나무가 무슨 생각에선지 뚜벅뚜벅 물가로 걸어간다
물풀 헤집으며 한 마리의 물고기가 미끄러진다
손짓하는 꽃나무를 알아보고 몸통을 튼다
꽃나무가 물고기에게 말을 건넨다
부끄러운 물고기는 이내 꽃그늘에 아래 숨어버린다
꽃나무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물고기를 찾는다
어디에도 물고기들의 합창이 들려오지 않는다
물고기는 정말 물 속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꽃나무가 강심을 보려고 발돋움한다
꽃송이들이 흥에 들떠 와글거리고
그들이 함빡 토해낸 말들이 공중에서 부서진다
무색해진 꽃나무가 앞발로 툭,흙무더기를 걷어찬다
물고기는 천천히 깊고 푸른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새어드는 햇빛알갱이 굴리며 부드럽게 몸 흔들면
꽃나무는 한번 더 온힘을 모아 꽃송이들 활짝 터뜨린다
어느 날,물고기는 자신의 몸 속에 환한 꽃나무가
자라고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란다 꽃나무의 지친
가슴에도 낯익은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부벼온다
*영남일보 신춘문예 및 `신라문학대상’ 대상 당선
포도나무전설
이 채 운
그대, 로동에 지친 어깨 거느리고 따가운 뙤약볕 가로질러 돌아올 때 문득 과육내음 묻어나는 휴식의 자리 그려보았는지요 서늘한 그늘 짜며 도는 넝쿨손 손짓하는 줄대우로 빤하게 보이는 하늘 훔치며 숨어있는 포도송이, 우리 어릴적 신나게 뛰여놀던 운동장만큼 크고 둥근 포도알의 우주속을 들어가보았는지요 어디라도 뿌리 내릴 까만 씨앗들 헤염치는 달디단 과즙의 바다, 출렁이는 파도에 몸 뒤척이며 자라나는 해초 돌무지에 앉아 조을던 고추잠자리 태양의 살점 베여먹고 빙빙도는 륜무, 그 서슬에 한바탕 취기의 혈관 부풀리는 포도나무 산들바람 이끄는 대로 들판을 질러온 젊은 남녀, 청보도 이파리에 얼굴덮고 숨박곡질하는 사랑 해보았나요? 누구든 오셔요 흐르는 땀 식히며 졸리운 잠속으로 빠져들면 주렁주렁 포도알들 홍분의 속살 돋우며 해 지도록 대지의 자장가 불러줄테니까요
상추쌈
이 채 운
이글거리는 대낮의 갈증과 찌부덩한 기분
갖고 싶어 움키고 싶은 것들까지 척척 포개 얹어
온 세상 푸르른 마음의 살로 포옥 싸서
한입 그득한 달관의 맛을 만나고 싶다
짙은 향기가 시든 입술 열어주고
환한 목구멍으로 노래가 흘러 나오게 한다면
흙살 비집고 나온 눈과 귀,두런거리는 물소리와
공기의 춤이 어울린 정신의 꼭대기로 올라간다면
어린 시절 나는 짠 온갖 생활의 감각들
뒤섞여 독이 되는 찌꺼기조차 오래삭힌 된장처럼
부드럽고 상큼하게 千手大悲의 큰 손바닥 내밀 듯
크게 거두어 감싼다면,
얼마나 감칠 맛 나는 세상 될까
<약력>
▲1965년 성주 출생. 본명 이향희.
▲영남대학교 철학과 졸업.
▲대동일보 여성문예상 최우수상 수상.
▲청구문화제 문예작품공모 시 당선.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신라문학대상 시 대상 당선.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대구시인학교 '사림시' 동인.
꽃나무와 물고기
이 채 운
강변에 한 그루의 꽃나무가 서 있다
꽃나무가 무슨 생각에선지 뚜벅뚜벅 물가로 걸어간다
물풀 헤집으며 한 마리의 물고기가 미끄러진다
손짓하는 꽃나무를 알아보고 몸통을 튼다
꽃나무가 물고기에게 말을 건넨다
부끄러운 물고기는 이내 꽃그늘에 아래 숨어버린다
꽃나무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물고기를 찾는다
어디에도 물고기들의 합창이 들려오지 않는다
물고기는 정말 물 속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꽃나무가 강심을 보려고 발돋움한다
꽃송이들이 흥에 들떠 와글거리고
그들이 함빡 토해낸 말들이 공중에서 부서진다
무색해진 꽃나무가 앞발로 툭,흙무더기를 걷어찬다
물고기는 천천히 깊고 푸른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새어드는 햇빛알갱이 굴리며 부드럽게 몸 흔들면
꽃나무는 한번 더 온힘을 모아 꽃송이들 활짝 터뜨린다
어느 날,물고기는 자신의 몸 속에 환한 꽃나무가
자라고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란다 꽃나무의 지친
가슴에도 낯익은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부벼온다
돌탑
우 이 정
산길 오르던 바람도 잠시 쉬어갑니다
갓바위 오르는 발길들이 분주합니다
웅크리고 앉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는
돌탑 위로 소망하나 더해질 때마다
햇살은 구름사이로 얼굴 내밀고
풀잎은 뒷짐지고 서성거립니다
팔공산 갓바위 오르는 길손들
이마 위에 솟는 땀방울 쳐다보며
돌탑은 구름인양 주저앉습니다
나는 잠시 두손모아 합장하며
흘러가는 구름 불러모읍니다
피안(彼岸)
이 은 림
저 집들, 언제 강을 건너
저렇게 무덤처럼 웅크리고 앉았나
아무도 몰래 건너 가버린 저 산들은
어떻게 다시 또 데려오나
젖은 길만 골라 가는 낡은 나룻배가
산과
나무들과 꽃들,
풀밭을 다 실어 나른 건가
남아있던 불빛마저 참방참방 뛰어서
저 편으로 가는구나
환하다,
내가 없는 저곳
유리꽃병
이 은 림
강물은 아무도 몰래 흘러서
이곳까지 왔다 가는 모양입니다
꽃병속에 숨어든 물빛 좀 보십시오
물빛이 어루만지는
꽃들의 표정은 또 어떻습니까
사흘째 잠겨있는 지친 발목
핥으며 내려오는 향기로운 말들
어두워지면 달을 매단 달빛 끌고와
한가닥씩 나눠주는 강물의 손길이
쉴새없이 부풀리는 꽃들의 모습
보이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강물은 제 갈길 가다말고
창밖만 내다보며 쪼그려 앉은
저 유리꽃병에게 살며시 왔다가
싱싱한 피 한모금 떼여주고
가버리는 모양입니다
[이은림시인 소개 및 약력]
이은림시인은 1973년 경남 양산 출생으로
경남양산종합고등학교 3학년때 해변시인학교에 참여했다가 서지월시인을 만나
졸업 후 바로 대구시인학교에서 장장 6년간 먼 거리인 경남 양산 물금리에서
매주 목요일 대구시인학교 시칭작강좌에 빠짐없이 참여해 몰두하면서
1996년 여성신문사 주최 제7회 ‘여성문학상’ 과 강원일보 주최 김유정문예작품공모
부산일보 여성문예상, 국제신문 여성문학상, 신라문학대상, 그리고
1997년 제6회 영남일보 신춘문예 영일문학상에 시가 각각 당선되었으며
서울예대문예창작과 졸업후 바로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다시 시 당선 되어
확고하게 자리를 굳히며 등단했다.
본명은 이은영인데 스승인 서지월시인이
'이은림'이라는 필명을 지어 주었으며. 이은림시인은
닉네임 또한 '소서노'인 만큼 강인한 시정신을 소유한 귀재로 알려졌는데
평소 노벨문학상을 받는게 자신의 문학적 소망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현재 대구시인협회 회원 및 대구시인학교 <사림시>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년전에 결혼을 했다.
이번 시집 『 태양중독자 』는 <문예중앙 젊은 시선18>로 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는데
1997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이후 데뷔한지 근 10년 만에 펴내는 첫시집으로
시인이 공들인 흔적인 역력한 작품들로 총 50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실려 있다.
단단하면서도 독창적인 감수성과 빛나는 상상력으로 버무려진 신인다운 패기가
뛰어나다는 평가다.
[이은림시인 약력]
ㅁ1973년 경남 양산 출생. 본명 이은영
ㅁ1996년여성신문사 주최 제7회 ‘여성문학상’ 시 당선.
ㅁ강원일보 주최 김유정문예작품공모 시 당선.
ㅁ부산일보 여성문예상 시 당선.
ㅁ국제신문 여성문학상 시 당선.
ㅁ신라문학대상 시 당선.
ㅁ1997년 제6회 영남일보 신춘문예 영일문학상 시 당선.
ㅁ1997년 제6회 영남일보 신춘문예 영일문학상 시 당선
ㅁ2001년『작가세계』 신인상 시 당선.
ㅁ서울예대문예창작과 졸업.
ㅁ현재 대구시인학교 <사림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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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라고 부르지마
최 문 자
들판 옥수수밭에 나가
옥수수 하나 붙잡고
옥수수 하나 알 듯
나를 안다고
나를 옥수수라고 부르지마.
옥수수 헝클어진 술다발
서로 스쳐갈 때
스쳐간다고 해서
여러 겹 옥수수 마음이
우두둑 씹히지 않는 것처럼
저 시퍼런 밭에 나가 앉은
배고 또 배도 시원치 않은 자궁들.
혼자 떨며 수태하는 자궁들
나도 옥수수도
모두 알 수 없는 슬픈 아이를 배고
시퍼렇게 크는 태아가 있어.
들판
옥수수밭 옆에 차를 세우고
쉬운 이름 부르듯
나를 옥수수라고 부르지 마.
옥수수 하나 붙잡고
큰 고통 지워버리고
그냥 옥수수라고 부르지마.
아무 소리 나지 않지만
수만 평에 있는 옥수수 그림자 속에
아직 나오지 않은 옥수수의 말이 있어.
다리
이성선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사과밭을 지나며 ..
나희덕
가을엔 나비조차 낮게 나는가
내려놓을 것이 있다는 듯
부려야 할 몸이 무겁다는 듯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매를 달았던 사과나무,
열매를 다 내려놓고 난 뒤에도
그 휘어진 빈 가지는 펴지지 않는다
아직 짊어질 게 남았다는 듯
그에겐 허공이, 열매의 자리마다 비어 있는
허공의 열매보다 더 무거울 것이다
빈 가지에 잠시 나비가 앉았다 날아간다
무슨 축복처럼 눈앞이 환해진다
아, 네가, 네가, 어디선가 나를 내려놓았구나
그렇지 않다면 이토록
사과나무 그늘이 환해질 수 있을까
꿰맨 자국 하나 없는 나비의 날개보다
오늘은 내 백결(百結)의 옷이 한결 가볍겠구나
아주 뒤늦게 툭, 떨어지는 사과 한 알
사과 한 알을 내려 놓는데
오년이 걸렸다.
옹관(甕棺) 1
정 끝 별
모든 길은 항아리를 추억한다
해묵은 항아리에 세상 한 짐 풀면
해가 뜨고 별 흐르고 비가 내리는 동안
흙이 되고 길이 되고
얼마간 뜨거운 꽃잎
또 하루처럼 열리고 잠겨
문득 매듭처럼 덫이 될 때
한 몸 딱 들어맞게 숨겨줄
그 항아리가 내 어미였다면,
길은 다시 구부러져 내 몸으로 들어오리라
둥근 길
길의 입에 숨을 불어넣고
내가 길의 어미가 될 것이니,
내 안에 길이 있다
내가 가득찬 항아리다
밀물
정 끝 별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벌거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上弦
나 희 덕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때로 그녀도 밝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가
다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上弦」전문 (『어두워 진다는 것』창작과 비평)
나희덕 씨의 시 「上弦」에 대한 이시영 시인의 촌평을 들어 본다.
<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무척 아름다운 시다. 이처럼 선명하게 아름다운 시에는
<해설>이 필요없는 법! 능선 위에 아슬히 걸터앉았다가 붉어진 얼굴로 사라져가는
달의 운행을 가만히 지켜볼 뿐.
이광호 교수의 글을 보기로 한다. 이 글도 2001년 8월 중앙일보에 실려 있다.
이 낯선 발견의 시학은 시 「上弦」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시에서 충만의 순간을 향해
움직이는 여성성으로서의 <上弦>의 이미지는 천상이 아닌 지상에서 자기 의미를 벗는다.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 보았다>는 고백에서,
그 <훔쳐보기>야말로 상투성과 금기를 넘어서는 시적발견의 다른 이름이다. 그 발견 다음에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훔쳐보기가 사물들의 꿈과 상처에 관한 예견으로 전환된 것이다. 시인의 발견을 따라가면,
저기 마음을 들킨 사물들처럼, 우리 상처도 깊어져 환해질까.
#####서정주 시 특선
자화상(自畵像)
서 정 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서풍부(西風賦)
서정주
서녘에서 부러오는 바람속에는
오갈피 향나무와
개가죽 방구와
나의 여자의 열두발 상무상무
노루야 암노루야 홰냥노루야
늬발톱에 상채기가
퉁수ㅅ소리와
서서 우는 눈먼 사람
자는 관세음.
서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속에는
한바다의 정신ㅅ병과
징역시간과
바다
서 정 주
귀기우려도 있는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우에 무수한 밤이 往來하나
길은 恒時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아- 반딪불만한 등불 하나도 없이
우름에 젖은얼굴을 온전한 어둠속에 숨기어가지고……너는,
無言의 海心에 홀로 타오르는
한낫 꽃같은 心臟으로 沈沒하라.
아- 스스로히 푸르른 情熱에 넘처
둥그란 하눌을 이고 웅얼거리는 바다,
바다의깊이우에
네구멍 뚤린 피리를 불고…… 청년아.
애비를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兄弟와 親戚과 동모를 잊어버려,
마지막 네 게집을 잊어버려,
아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 아니 沈沒하라. 沈沒하라. 沈沒하라 !
오- 어지러운 心臟의 무게우에 풀닢처럼 흣날리는 머리칼을 달고
이리도 괴로운나는 어찌 끝끝내 바다에 그득해야 하는가.
눈뜨라. 사랑하는 눈을뜨라…… 청년아,
산 바다의 어느 東西南北으로도
밤과 피에젖은 國土가 있다.
아라스카로 가라!
아라비아로 가라!
아메리카로 가라!
아푸리카로 가라!
눈 오시는 날
서 정 주
내 戀人은 잠든지 오래다.
아마 한 千年쯤 전에......
그는 어디에서 자고 있는지
그 꿈의 빛만을 나한테 보낸다.
분홍, 분홍, 연분홍, 분홍,
그 봄 꿈의 진달래꽃 빛깔들.
다홍, 다홍, 또 느티나무 빛,
짙은 여름 꿈의 소리나는 빛깔들.
그리고 인제는 눈이 오누나......
눈은 와서 내리 쌓이고,
우리는 제마다 뿔뿔이 혼자인데
아 내곁에 누어있는 여자여.
네 손톱 속에 떠오르는 초생달에
내 戀人의 꿈은 또 한번 비친다.
꽃
서정주
가신이들의 헐덕이든 숨결로
곱게 곱게 씻기운 꽃이 피였다.
흐트러진 머리털 그냥 그대로,
그 몸ㅅ짓 그 음성 그냥 그대로,
옛사람의 노래는 여기 있어라.
오-- 그 기름묻은 머리ㅅ박 낱낱이 더워
땀 흘리고 간 옛사람들의
노래ㅅ소리는 하늘우에 있어라.
쉬여 가자 벗이여 쉬여서 가자
여기 새로 핀 크낙한 꽃 그늘에
벗이여 우리도 쉬여서 가자
맞나는 샘물마닥 목을추기며
이끼낀 바위ㅅ돌에 택을 고이고
자칫하면 다시못볼 하눌을 보자.
金가락지 구멍
서정주
이 븨인 金가락지 구멍에
끼었던 손까락은
이 구멍에다가 그녀 바다를 조여 끼어 두었었지만
그것은 구름되어 하늘로 날라 가고----.
이 븨인 金가락지 구멍에
끼었던 손까락은
한 하늘의 구름을 또 조여서 끼었었지만
그것은 또 우는 비 되어 땅으로 내려지고----.
이 븨인 金가락지 구멍에
끼었던 손까락은
인제는 그 어지러운 머리골치를 거두어
누군가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것 까진 알겠지만
누구냐
그 허리에 찬 주머니 속의 그녀 어질머리로
梧桐꽃 내음새 나는 피리 소리를
연거푸 이 구멍으로 불어 넣어 보내고만 있는 너는?
부활(復活)
서정주
내 너를 찾어왔다 ---- 臾娜. 너참 내앞에 많이있구나 내가 혼자서 鐘路를 거러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오는구나. 새벽닭이 울때마닥 보고싶었다 ---- 내 부르는소리 귓가에 들리드냐. 臾娜. 이것이 멫萬時間만이냐.
그날 꽃喪卓 山넘어서 간다음 내눈동자속에는 빈하눌만 남드니, 매만저볼 머릿카락 하나 머리카랏 하나 없드니, 비만 자꾸오고 ---- 燭불밖에 부흥이 우는 돌門을열고가면 江물은 또 멫천린지. 한번가선 소식없든 그 어려운 住所에서 너무슨 무지개로 네려왔느냐. 鐘路네거리에 뿌우여니 흐터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볓에 오는애들. 그중에서도 열아홉살쯤 스무살쯤 되는애들. 그들의눈망울속에, 핏대에, 가슴속에 드러앉어 臾娜 ! 臾娜 !臾娜 ! 너 인제 모두다 내앞에 오는구나
도화도화(桃花桃花)
서정주
푸른 나무그늘의 네거름길우에서
내가 붉으스럼한 얼굴을하고
앞을볼때는 앞을볼떄는
내 裸體의 에레미야書
毘盧峰上의 强姦事件들
미친하눌에서는
미친 오픠이리아의 노래소리 들리고
원수여. 너를 찾어 가는길의
쬐그만 이休息
나의微熱을 가리우는 구름이있어
새파라니 새파라니 흘러가다가
해와함께 저므러서 네집에 들리리라.
행진곡(行進曲)
서정주
잔치는 끝났더라.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알간 불 사르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걷으면 저무는 하늘.
일어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금씩 취해 가지고
우리 모두 다 돌아가는 사람들.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멀리 서 있는 바닷물에선
난타하여 떨어지는 나의 종소리.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나팔꽃
송수권
바지랑대 끝 더는 꼬일 것이 없어서 끝이다 끝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나팔꽃 줄기는 허공에 두 뼘은 더 자라서
꼬여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아침 구름 두어 점, 이슬 몇 방울
더 움직이는 바지랑대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덩굴손까지 흘러나와
허공을 감아쥐고 바지랑대를 찾고 있을 것이다.
이젠 포기하고 되돌아올 때도 되었거니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가냘픈 줄기에 두세 개의 종까지 매어달고는
아침 하늘에다 은은한 종소리를 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젠 더 꼬일 것이 없다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우리의 아픔도 더 한 번 길게 꼬여서 푸른 종소리는 나는 법일까
시골길 또는 술통
송수권
자전거 짐받이에서 술통들이 뛰고 있다
풀 비린내가 바퀴살을 돌린다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
자갈들이 한 치씩 뛰어 술통을 넘는다
술통을 넘어 풀밭에 떨어진다
시골길이 술을 마신다
비틀거린다
저 주막집까지 뛰는 술통들의 즐거움
주모가 나와 섰다
술통들이 뛰어내린다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여승(女僧)
송수권
어느 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
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
나는 하루종일 방안에 누워서 고뿔을 앓았다.
문을 열면 도진다 하여 손가락을 침을 발라가며
장지문에 구멍을 뚫어
토방 아래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 고랑이 깊은 음색과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집 처마끝에 걸린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너무 애지고 막막하여져서 사립을 벗어나
먼발치로 바리때를 든 여승의 뒤를 따라 돌며
동구밖까지 나섰다
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보고
우는 듯 웃는 듯 얼굴상을 지었다
(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
나는 무엇을 잘못하여 들킨 사람처럼 마주서서 합장을 하고
오던 길로 뒤돌아 뛰어오며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에
마구 흙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여승이 우리들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절간 속에
산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따금 꿈속에선
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여승을 만나곤 한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
우리 나라 풀이름 외기
송수권
봄날에 날풀들 돋아오니 눈물난다
쇠뜨기풀 진드기풀 말똥가리풀 여우각시풀
이 나라에 참으로 풀들의 이름은 많다
쑥부쟁이 엉겅퀴 달개비 개망초 냉이 족두리꽃
물곶이 앉은뱅이 도둑놈각시풀들
조선총독부 식물도감을 펼치니
救荒食의 풀들만도 백오십여 가지다
쌀 일천만 섬을 긁어가도 끄떡없는 민족이라고
그것이 고려인의 기질이라고
나마무라 이시이가 서문에서 점잖게 게다짝을 끌고 나온다
나는 실제로 어렸을 때 보리 등겨에 土麵국수를 말아먹고
북어처럼 배를 내밀고 죽은 늙은이를
마을 앞 당각에 내다버린 것을 본 일이 있었다
햄이나 치이즈 버터나 인스턴트 식품이면
뭐나 줄줄이 외워대는 어린놈에게
어서 방학이 왔으면 싶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센인바리(千人針)를 받으러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았듯이
나 또한 이 나라 산천을 떠돌며
어린것의 식물 표본을 도와주고 싶다.
쇠똥가리풀 진드기풀 말똥가리풀 여우각시풀들
이 나라에 참으로 풀들의 이름은 많다
쑥부쟁이 엉겅퀴 달개비 개망초 냉이 족두리꽃
물곶이 앉은뱅이 도둑놈각시풀들.
적막한 바닷가
송수권
더러는 비워놓고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
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밀물을 쳐보내듯이
갈밭머리 해 어스름녘
마른 물꼬를 치려는지 돌아갈 줄 모르는
한 마리 해오라기처럼
먼 산 바래서서
아, 우리들의 적막한 마음도
그리움으로 빛날 때까지는
또는 바삐바삐 서녘 하늘을 깨워가는
갈바람 소리에
우리 으스러지도록 온몸을 태우며
마지막 이 바닷가에서
캄캄하게 저물 일이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서정주시인에 의해 당선된 시
즐거운 편지
황 동 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
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
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
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
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천은사운(泉隱寺韻)
고은
그이들끼리
살데.
골짜구니 아래도 그 위에도
그들의 얼얼이 떠서
바람으로 들리데.
그이들은
밤 솔바람소리,
바위보아
비인 산 허리.
가을이 오데.
바위를 골라
나앉아 우는 추녀 끝
뜰에 떨어지는 풍경소리에,
그이들끼리
살데.
그이들은 늙데.
돌아와 한번 잊은제
도로 가고 싶은 그이들의 얼 바람 진
산 허리.
그이들은
살데.
<박재삼 시 특선>
맑은 하늘 한복판
박재삼
맑은 하늘 한복판
새소리의 무늬도 놓쳐버리고
한 처녀를 사랑할 힘도 잃어버리고
너댓 살짜리 아기의
발 뻗는 투정으로 울고 싶은 나를
천만뜻밖에도 무기징역을 때려
이만치 떼어 놓고
환장할 듯 환장할 듯
햇빛이 흐르나니,
바람이 흐르나니.
▷춘향이 마음抄
박재삼
1. 수정가
집을 치면, 정화수 잔잔한 우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신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평상의, 갈앉은 뜨락의, 물내음애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래. 서방님은 바람 같단들 어느때고 바람은 어려올 따름, 그 옆에 순순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이 마음이 아니었을래.
하루에 몇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때마다 일렁여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 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진실로 우리가 만든 산신령은 그 어디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의 만리같은 물살을 굽어 보는 춘향은 바람에 어울린 수창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2. 바람 그림자를
어지간히 구성진 노래 끝에도 눈물나지 않던 것이 문득 머언 들판을 서성이는 구름 글미자에 눈물져 올 줄이야.
사람들아 사람들아
우리 마음 그림자는, 드디어 마음에도
등을 넘어 내려오는 눈물이 아니란 말가.
문득 이도령이 돌아오자, 참 가당찮은
세월을 밀어버리어, 천지에 넘치는 바람
의 화안한 그림자를 춘향은 눈물 속에 아로새겨 보았을 줄이야.
3. 매미 울음에
우리 마음을 비추는
한낮은 뒷숲에서 매미가 우네
그 소리도 가지가지의 매미 울음,
머언 어린날은 구름을 보아 마음대로
꽃이 되기도하고 친한 이웃아이 얼굴이 도기도 하던 것을,
오늘은 귀를 뜨고 마음을 뜨고, 아아
임의 말소리, 미더운 발소리, 또는 대님
푸는 소리로 까지 어여뻐 그려낼 수 있는
4. 화상보
참말이다. 춘향이 일편단심을 생각해 보아라. 원이라면, 꿈속엔 훌륭한 꽃동산이온전히 제것이 되었을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꾸는 슬기 다음에는 마치 저 하늘의 달에나 비길 것인가, 한결같이 그 둘레를 거닐어 제자리 돌아오는 일이나 맘대로 하였을 그것이다. 아니라면, 그 많은 새벽마다를 사랑치고 그렇게 같은 때를 잠깨일 수는 도무지 없는 일이란 말이다.
<시조>내 사랑은
박재삼
한빛 황토(黃土)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 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萬 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 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춰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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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박재삼-시창작의 비법은 없다
시창작의 비법은 없다
-문학체험을 많이 해라
-사고를 깊고 풍부하게 하라
-3. 쓰고 또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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