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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심양을 떠나며

아미산월 2008. 8. 11. 00:05

■제1편 서지월시인의 만주대장정-39. 심양을 떠나며

 

39. 심양을 떠나며


 

◇심양에서의 유감


 

오후 4시 6분 열차로 단동으로 출발해야 한다. 우리 일행은 「요녕신문」 차경순 기자와 함께 고궁의 거리를 한참을 걸어나와서 택시를 잡아탔다.

한국의 서울을 방불케하는 대도시였다. 만주땅 어느 지역보다 큰 도로의 차량 행렬이라든가 고층빌딩 수많은 인파 역시 이 더운 여름날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사진 좌> 심양 시가지에 세워져 있는 모택동 동상.
사진 우> 심양의 용담산 안내도.

지난 8.15해방전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건너가 머물었다는 「만주 봉천」처음와 본 느낌은 극심한 도심화 현상 뿐이었다. 옛모습은 도심화의 물결에 밀려나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음이 뻔한 일, 하루 낮을 보내고 심양을 떠나야 마음은 안타까웠다.

게다가 「요녕신문」사의 부총편으로 있다는 림금산시인을 만나고 지나가야한다는 안타까움은 더 컸다. 림금산씨는 아직 통성명한 적은 없지만 같은 한 핏줄의 시인이라는 것, 그리고 1994년 7월 19일자 「요녕신문」에 「진달래산천」 「두만강 돌맹이」 「해란강은 흐른다」 「추석 달빛」 등 5편의 내 민족기상을 담은 시가 이미 이곳에서 발표된 터여서 더욱 마음이 이곳을 놓치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하고는 또 동갑내기이기도한 림금산시인, 보고싶은 시인이기도 했었다. 대신 차경순기자가 나와서 우리 일행을 위해 더운 여름 하루를 투자해 주어서 고맙기 이를 데가 없었다.

 

◇달빛 속의 민족정신

 

「요녕신문」에 발표되었던 나의 시 가운데 한 편을 소개해 본다.


옥수숫대 알품는 서늘한
바람끼의 하늘 보면
저 달도 저리 밝아
옥동자라도 하나 품은 것일까


묘지 위의 혼들은 구천에 떠돌고
산 자의 옷자락은 이리도
부드럽고 가벼운데
옛기러기는 날아오지 않는다.


강은 흐르건만 산이 막혀 못 오는가
들꽃처럼 돋아나는 별을 따고
긴 능선의 역사 앞에서
주름진 이마 잘룩한 허리의 강토…


달이여, 비추이거든
우리 가장 깊은 골짜기를 비추어
남북강산 할것없이 저
목메인 만주땅 압록강 너머
길림 두만강 너머 연길
그리고 있잖은가, 해란강 띠를 두른
일송정에도 비추어다오!


옥수숫대 알품는 서늘한 바람끼의
하늘 위에
혼령은 살아 있어
색동 치마저고리 흰 바지적삼의
펄펄펄 날리는 달빛이
숨쉬고 있네.

그러니까 가을이 오는 온 들에 산자락에 붉은 수염 날리며 옥수수가 익는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도 결실을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 세숫대야의 가장자리를 문지르면 물이 요동치며 튀어오르는 기이한 모습. (고궁에서) 관람료 5원씩 받는다.


 

거기다가 일년 가운데 가장 온전하다는 보름달인 「추석 달빛」이 삼천리 금수강산뿐만 아니라 오천년 역사의 옛우리땅인 만주땅에까지 비추일 것은 뻔한 일이니, 「추석 달빛」을 통해 하나가 되는 마음을 읽어보려했던 것이다.

또한, 먼저 세상을 뜬 이들의 후예인 우리들이 살아있어서 제땅을 지키고 있으나 광활했던 영토의 옛날은 돌아오지 않는 안타까움도 배어있는 것이다.

가을은 우리 민족의 숨결이 가장 청명하게 잘 비춰보이는 계절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보았던 것이기도 했다. 내가 이 시를 집필했을 때는 만주땅 밟아보는 것을 상상도 못했으며, 만주땅을 밟아보기 훨씬 전에 쓰여졌던 작품이다.

시집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에 수록된 민족서정시 전편이 상상으로 미리 써 두었던, 아니 절로 쓰여졌던 것이다. 물론 그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도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단동행 열차안에서


 

심양역(중국말 한자표기는 「심양점」)에서 오후 4시 6분발 열차가 처음 중국 만주땅 발 디뎠을 때 단동으로 다시 돌아가는 셈이다.


◀ 심양시가지에 대바구니 실은 당나귀가 지나가는 풍경이 이채롭다.


 

역시 단동행열차 안은 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좌석을 간신히 차지한 우리 일행은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우리 한국의 경우처럼 장거리 인데도 불구하고 서서가는 사람도 많았다.

4시간 가량 가야하니 가까운 거리가 절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열차안에서의 중국인들을 보니까 떠드는 것하고 우물우물 먹는 것을 빼놓지 않는게 그들의 속성같았다. 말하는 것도 낮은 음성이 아니기에 떠드는게 되는데 왠지 시끄럽게 들리고 먹는 건 주로 맛없는 것들로 보이는데 그들은 맛있게 먹는 것 같았다.

해바라기씨가 그것인데, 만주땅 어딜가나 옥수수 해바라기가 많이 심어져 있는걸 목격할 수 있는데, 그 해바라기의 씨가 이런 경우 소비되는 것이었다. 해바라기씨를 노점상마다 놓아두고 파는 것을 많이 보아왔는데 그게 장거리 열차안에서 많이 먹는 것이었다.

해바라기씨라 해 봐야 먹는 알이 꽉찬것도 아니었다. 쭉정이같은 것이었는데도 그들은 즐겨 까먹는 것 또한 부지런함을 볼 수 있었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인들 속에 한 청년과 자리를 마주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흐름으로 해서 드디어 우리 일행과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 청년을 배움이 있는 자로서 영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자와 영어를 섞어서 종이위에다 한참을 주거니받거니 그려대다 보니 의사소통이 이뤄졌고 그런 순간마다 함께 박장대소하며 웃어버렸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을 뿐만아니라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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