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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끝없는 만주벌판

아미산월 2008. 8. 10. 23:56

■제1편 서지월시인의 만주대장정-32. 끝없는 만주벌판

 

32. 끝없는 만주벌판

◇리태복 기자 이야기

흑룡강신문사측의 점심식사 환대를 받은 후 일행은 다시 또 가야하는 길목인 길림으로 향하는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하얼삔을 최북단으로 해서 시계바늘 반대방향으로 돌아 내려오는 첫 도착지가 바로 길림이다.


◀하얼삔 역내 승강구 풍경

하얼삔역으로 향하는데 흑룡강신문사 대로변에서 택시를 잡아탄 우리 일행은 정들었던 한춘선생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리태복기자는 또 우리를 하얼삔역까지 가는데 동행해 주었다.

그만 놓치고 지나갈 뻔했는데 여기서 잠시 리태복기자를 소개하고 넘어가야겠다.

고향이 경북 안동으로 큰 할아버지 할아버지 형제가 당시 임시정부 국무경까지 지낸 독립운동가인 이상용선생을 따라 길림성 유하라는 곳에서 신흥군관학교를 나왔으며 큰할아버지께서는 「우리는 살러온게 아니라 나라를 찾기 위해서 왔다. 언젠가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경학사(신흥군관학교)>에서 농사지어서 먹여살리는 일을 맡아 했으며, 큰할아버니와 함께 토장은 하지 않고 화장을 했다 한다.

중국인민정부의 방침으로 묘를 쓰는 걸 잘 보지 못했으니까 그런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것은 안동댐이 수몰되는 바람에 고향마을이 수몰되어 증조할아버지 묘만 남아 있고 앞에서 말한 대로 할아버지 형제는 중국 만주땅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광활한 황홀경 「아아, 만주벌판」

하얼삔역으로 온 우리 일행은 낮1시21분발 열차에 몸을 싣고 길림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과연>이라는 말이 여기서도 또 실감하게 되는데 저녁 6시50분 길림역에 도착하기까지 6시간 남짓 장거리 시간을 차창밖으로 눈을 보내는 일이 전부였다.


◀하얼삔에서 길림으로 가는 광활한 만주벌 풍경

왜냐하면 끝없는 만주벌판이라는 실감이 목단강시에서 하얼삔으로 북상했을 때처럼 하얼삔에서 기림으로 남하하면서 더욱 현저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여기서 미당이 25세때 만주에가 있을 때 썼다는 <만주에서>라는 시를 읽고 그 실감을 충분히 받았으니까 하는 말인데 미당 서정주시인이 표현한 만주땅은 그야말로 끝없는 벌판의 허허함 그대로였다.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참 이것은 너무 많은 하눌입니다.
내가 달린 들 어데를 가겠읍니까.
紅布와 같이 미치기는 쉬웁습니다.
멫 千年을, 오- 멫 千年을 혼자서 놀고 온 사람들이겠습니까.

鍾보단은 차라리 북이 있습니다.
이는 멀리도 안들리는 어쩔 수도 없는 奢侈입니까.
마지막 부를 이름이 사실은 없었읍니다.
어찌하야 자네는 나보고, 나는 자네 보고 웃어야 하는 것입니까.

바로 말하면 하르삔市와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자네도 나도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무슨 처음의 복숭아꽃 내음새도 말소리도, 病도 아무것도 없었읍니다.」

-시 <만주에서>전문

이 시를 인용해 본 것은 지평선 끝이 안보인다는 만주벌판의 실감을 말로 다 할 수 없으니 한국 제일의 시인인 미당 서정주시인의 시를 통해 음미해 보는 것도 실감에 실감을 더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아닐까 해서이다.

그렇다면 미당의 시를 통한 만주벌판에 잠시 귀기울여 보자.

지금 이 시간 평소 시따위를 아주 좋아하지 않았더라도 아니면 시를 가까이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여행은 즐길 것이며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다들 좋아할테니까.

또 알고보면 시란 굉장히 어렵거나 영 딴소리를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있는 사람들, 이번 이<만주에서>라는 시를 접해보고 「아, 詩란 정말 이렇게 건강식품의 엑기스 같은 것이구나, 참으로 몰랐네, 정말 시쓰는 사람들 수고많으시네.」하고 감탄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평소 가졌던 마음으로 「詩쓰는 사람들 또는 통칭해서 문학하는 사람들 밥먹고 할일 없는 짓거리만 하고 앉았네」라는 통념도 깰 수 있고 「詩 나부랭이나 쓴다고 술 담배 폭음하고 잠도 안자고 꾸부정한 몰골로 걸어다니는 자」라는 생각도 말끔히 씻어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엑기스란 농축된 것이어서 물에 조금만 넣어 풀어도 많은 양이 되듯 詩 한 구절에도 엄청난 뜻이 들어있다는 것도 알아낸다면 이게 정신건강이고 정신건강식품으로 시가 기여하는 몫이 아닐런지.

먼저 앞의 詩 제1연을 보면 「참 이것은 너무맑은 하눌입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끝없는 만주벌판을 두고 너무 많은 하늘이 나오다니.

바로 무한정 넓디넓은 벌판 지평선 끝이 안 보이니까 하늘을 끄집어 와서 하늘이 가득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가히 일품이 아닌가.

우리가 비어있는 커다란 그릇을 두고 그릇 자체가 텅 비어있다고 말한다면 아무런 실감을 못 가지듯 너무 많은 하늘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면 그게 더욱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표현이 된다는 말이다.

다음의 대목으로 「내가 달린 들 어데를 가겠읍니까」인데 이 역시 달리 풀이하면 내가 달려봐도 그 자리다 라는 말인데 무얼 뜻하는가.

너무 크고 넓어서 달려봐도 끝이 없다는 표현이다.

그럼 마지막연인 제3연으로 넘어가보자.

지금 시인이 만주벌판을 노래하고 있는데「바로 말하면 하르삔市와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자네와 나도 없었습니다.」이는 무슨 뜻인가.

만주벌판의 광활함 그 자체를 두고 표현한 것이다.

태초의 만주벌판은 인가도 도시도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러니까 더욱더 실감나는 벌판뿌이었다는 말이다.


◀서지월시인이 '1만리 만주기행'을 다녀와서 미당 서정주시인을 찾아뵙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미당 서정주시인의 시 '만주에서'와 미당이 25세때 만주에서 보내던 시절 경험담을 듣고 있다.

계속 이어지며 끝을 맺는데 「무슨 처음의 복숭아꽃 내음새도 말소리도, 病도 아무것도 없었읍니다.」역시 같은 뜻으로 읽히는데 막막한 만주벌판임을 그대로 말하는게 아니라 원시의 세계로 되돌아 가서 보는 표현으로 되어있다.

원래의 만주땅의 막막한 벌판이미지를 끌고옴으로써 설득력을 한층 고조시키는 수법을 쓰고 있음을 알 수있다.

그러니까, 흔하지 않은 생각으로 고도한 표현방법을 써서 읊어내는 한 편의 시란, 생각나는 대로 마구 써버리는게 아니라는 것이며 농축된 이미지 그리고 시공을 초월한 깊은 인식을 바탕으로 했을때, 산문이 아닌 시가 되며 말이 아닌 문장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미당이 가본 만주벌판 그대로 그 광활함은 어떻게 다 표현한다고 해서 전달이 다 되겠는가.

그나마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면 다행이겠다.

끝없는 벌판이 이어지는가 했더니, 그곳도 사람 사는 땅이라 먼 들판에 또같은 모양과 크기의 집들이 모여있는데 그것도 일순간, 또다시 끝없는 벌판이 수십번도 더 반복되며 이어지고 있었다.

그 벌판에는 여름이라 왼통 초록의 물결이었는데 바로 끝없는 지평선이 끝없는 옥수수밭이 대부분이었다.

내 이 신비함은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말로만 듣던 만주벌판이 이토록 넓다 뿐만이 아닌 끝이 안보인다는 사실.

독자들은 아시는가? 묻고싶다.

왜 있잖은가 강한 충동이 일어날 때 참지 못하고 내뱉는 말이 있듯이 나에게는 독자 여러분들은 정말 대만주벌판의 끝없는 황홀을 아시는가 말이다.

물론 맛보지 않아서 그 열매의 맛이 어떤지 영 모르는 사람도 있을테고 상상으로 조금은 느껴서 입속에서 침 배어나오는 사람도 있겠지만.

황홀경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러 느낌에서 오는 것인데, 지금 나로 말할것 같으면 하얼삔에서 기림으로 가는 6시간 동안의 차창밖 만주벌판 풍경을 두고 하는 그 황홀경을 말함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몸 뜨겁게 달아올라 「자기야, 나 미치겠어!」하는 아주 밸런스 맞는 그런 황홀경도 황홀경이지만 그것가지고만 황홀경이라면 속인이지 않겠는가.

쬐그만 공간속에서의 황홀경보다 더한 광활한 공간밖에서의 황홀경이 만주벌판에 가보면 있다는 것을 힘주어 말해두는 바이다.

여러분들도 한 번 떠나보면 어떨까.

일평생 살면서 늘 같은 골목만 다니고 살아온 우리들의 일상, 나중 내생에서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가.

현생이 아니면 영영 못 가고 못 보는 것인 것을.

누가 말했잖은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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