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백두산 장백폭포
◇두메양귀비꽃의 소견
처음 가 본 백두산 정상. 천지는 나에게 잠시잠깐씩 명경같은 자신의 모습 보여주었을 뿐
옷 다 벗지않고 나를 바라보는 여자처럼 그만 내려오게 만들고 말았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45년간 살아온 내생(生)에 대해 스스로 반추해 보았다. 내가 무얼 잘
못했던가 부모와 친구, 스승과 제자, 내가 알아온 여자들, 아니면 조국에 대해 민족에 대해
무얼 잘못했으며 용서받지 못한 일이 있었던가. 이처럼 천지는 사람을 알아 그 모습을 보여
준게 아니었을까. 나이가 들수록 때묻어가는 인간들의 삶이 안타까웠던 것일까. 좀더 몸을
깨끗이 해 다음에 다시 한번 오라는 화두(話頭)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생에 처음 올라본 백두산 등정에서 '두메양귀비'라는 노란 빛깔의 곧고 따스한 느낌을 한
꺼번에 받은 그 꽃에 대한 이미지를 나는 지금까지도 떨쳐버릴 수가 없었는데, '두메양귀비'
는 세찬 산정(山頂)의 바람이 부는데도 불구하고 조금도 움츠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위풍을 하염없이 퍼내어 주어 내게는 더없는 사랑의 화신(化身)처럼 느껴졌으니까 말인데,
내게는 '어느해 여름 서해바다에서 잠시 만나/한잔의 커피로 눈맞춤했던 사람/2년만에 다시
그곳 서해바다에서 스치다가 잠시 만나/서로의 안부 묻고는 기별없이 되어버린지/4개월 가
까운 어느 깊어가는 가을날/처음처럼 한잔 커피로 몸데운 사람/백두산에 올라서 본 두메양
귀비처럼/자신의 위풍 당당히 드러내면서도/따뜻하게 울려오는 그 여자' 다름아니었다.
◇흑풍구 앞에서
'두메양귀비'의 손 흔들어주는 모습을 뒤로하고 내려오는데, 아 어디서 나타났는지 흑까마귀
한 마리가 산등성이를 비껴 날아오르는 것을 순식간에 발견한 나는 그게 그냥 날아오르는게
아니라, 저 고구려 고분벽화의 해속의 세발까마귀 그 까마귀가 이곳에 날아든게 분명했다.
나는 지금까지 고구려땅을 지나오며 고구려땅의 온기를 온몸에 받아안고서 드디어 백두산에
올랐으니까 말이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지 않던 천지, 그리고 위풍당당한 내 애인처럼 느껴진 두메양
귀비꽃, 이 순간에 와서는 저 흑까마귀 한 마리가 하산하는 나의 눈앞에서 곡선을 그려 보
여주는 행위, 이 모두가 나에게는 우연이 아닌 걸로 비쳐졌다.
굽이진 산길을 내려오는데 '흑풍구(黑風口)'가 보였다. 우리 일행은 엔진소리와 함께 기름냄
새까지 범벅이 되어 귀를 때리고 코를 찌르는 지프를 세워 '흑풍구'로 올라섰다. 여기에서
보이는 일대 장관이 있었는데 저 멀리 흘러내리는 흰물줄기의 장백폭포였다. 역시 안개가
끼어 희미했다가는 다시 선연한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저 장백폭포는 수많은 세월을 흘러내
려도 모자람없는 걸 보며 유구한 자연의 위대함을 늘 채워져있는 천지와 함께 실감하지 않
을 수 없었다.
다시 지프에 몸을 실어 백두산 수목림을 지나 왔을 때 갈림길이 나타났다. 하산하는 길과
왼쪽으로 굽어들어가는 장백폭포가는 길이었다.
◇장백폭포가는 길
장백폭포 가는 길로 접어들었을 때는 이제까지는 참았다는 듯이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
했다. 이 무슨 하염없는 눈물이란 말인가. 지난 밤 아니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아침이 되어
서는 개는가 했더니, 내게 잠시 천지의 파란 물을 몇초 간격으로 보여주더니 더 이상 감당
할 길없는 듯 무거운 비를 하늘이 쏟아붓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런 상황을 낭패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내가 어떤 여자하고 잘 지내다가 갑자기 바
람불어 앞이 흐려지듯 이상한 상황이 찾아들어 서로 오해하거나 잠시 만나지 않고 지내는
운명을 맞아들였을때에도 겸허하게 여겨지는 마음 다름아닌 거와 같이 그저 받아들여야 하
는 수밖에 없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온산 길바닥 상점 그리고 차량이 즐비한 장백폭포 가는 길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누
가 이런 데에 와서 대자연의 품속에 들었다고 할 것인가. 지금은 우리의 땅이 아니지만 인
간세상의 한면을 보는 듯했다. 대구로 말할 것 같으면 칠성시장이나 방천시장같이 빽빽한
인파의 물결, 차량의 물결 상점 호텔들이 왜 이 깊숙한 곳에까지 와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장백폭포로 가는 너른 개울을 질러가는 길에는 온천수가 김을 모락모락 피워내고
있는데 줄을 쳐 금지구역으로 만들어 놓은 통에 아무도 그 온천수에 손이나 발을 담가 볼
수 없게 되었으니 그런 자유마저 박탈당한 현실이 돼버렸다. 누군가가 주전자를 들고 온천
수를 퍼담으려고 줄 쳐 놓은 경계를 넘으려 하는데 감시원인지 누군지 통제하고 있었으니
단지 장백폭포로 가는 길섶 벗어나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계란도 중국측 상인들이 온천수 끌어들인 샘속에 넣어 익힌 삶은 계란을 사
먹어야 되지 날계란을 가지고 와서 자유롭게 흐르는 온천수에 담가 삶아먹어보는 시절은 몇
년전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 우리의 산'하고 우겨봐도
펼쳐놓은 길로만 발걸음을 옮길뿐 물도 마음대로 못 만지게 되어있는 현실인 것을 어쩌랴.
계란의 경우 날계란 60개를 살수 있는 10원(중국 화폐단위)으로 이곳에서는 삶은 계란 3개
를 사먹을 수 있으니 굉장히 비싸게 사먹는 형편이 돼 버렸음에도 어찌할 수 없다. 나는 삶
은 계란 파는 그 중국측 청년 넷하고 친구가 되어 담배도 서로 나누어 피우고 재미있게 지냈
지만(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어도) 씁쓸한 입맛은 씻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