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인연]<만주기행5>(2008.5-6월호)-연길을 가다
[만주기행-5]-연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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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영이 발해를 세운 돈화 벌판에서, 한국 서지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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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길역 광장 춤추는 조선족 여인조각상 앞에서, 한국 서지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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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용정 윤동주 묘소를 찾아, 한국 서지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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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변 일송정에 올라,서지월 윤미전 등 한국시인들.
한국에서 중국 만주땅 장춘, 장춘에서 길림, 길림에서 연길로 남하하는 코스가 그것이었는데 일제치하 우리 민족들이 이주하여 가서 정착한 땅이라는 실감이 더하리만치 가는 곳마다 조선족들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우리와 다름 아닌 동질의 정서였다. 단지 그들의 삶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는 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은 아침 일찍 일어나 길림 시가지에서 도라지잡지사 전경업사장이 안내하는 대로 길림시조선족문화예술관 앞 대로변에서 연길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고속버스라 하지만 갈 길이 너무나 멀고 먼데 이미 우리 일행이 승차했을 때는 좌석 없어 통로에 간이의자를 놓고 쭈그리고 앉아서 가야했다. 한두 시간도 아니고 장장 6시간을 가야 하니 낭패였다. 세 시간 남짓하여 정차한 곳이 교화라는 곳이었다. 마침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어서 항의를 하니 한 시간 정도 가면 돈화인데 거기서는 빈 자리기 난다는 것이었다. 명색 고속버스를 탔는데 이는 일반 시외버스를 탄 것과 다름 아니었다.
숨막히는 빽빽한 버스 안에서 곤혹스럽게 한 시간 반쯤 달려 정차한 곳이 바로 벌판이 훤히 바라보이는 돈화의 간이버스정류장이었다. 3시간 남짓 달려왔으니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출발하는 것이었다. 간이버스정류장이라야 식당 건물 하나인데 서민적인 냄새가 풍기는 물씬 풍기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 그냥 이곳 돈화를 지나치지만 언제 이곳을 찾아오나 하는 기대로 바로 연길로 향했다. 알다시피 나로서는 처음 당도한 돈화이지만 대조영이 발해를 세운 도읍지가 돈화 아닌가. 아쉬움을 남긴 채 돈화의 그 넓은 벌판을 뒤로 하고 연길로 향했던 것이다.
새롭게 단장된 연길역사는 압도적인 풍모로 바뀌어 있었는데 그 옆에 시외버스터미날이 있었다. 연길역이라는 흘림체 한글 글씨가 압도적으로 다가오면서 왠지 푸근한 마음이었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연변작가협회 부주석인 내 아우 석화시인이 연변대학 조문학부 학생과 함께 마중 나왔다. 한국에서 석화시인을 더러 만나기도 했지만 이곳 연길에 그가 뿌리 박고 살아가는 터전에서 만나니 더욱 든든했다. 연변대학 조문학부 그 학생은 내가 한국애서 온 고은시인이나 신경림시인쯤 된 것처럼 연방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렀는데. ‘한국 서정시인 서지월, 연길에 오다’를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경우, 이번 제6차 만주기행은 4년만인 것 같은데 참 오랜만에 만주땅을 밟게 되었다는 것, 거기다가 그냥 만주기행을 온 것이 아니라 바로 연변시인협회가 창립 되고 1주년 기념 행사 및 연변시잡지 <시향만리>창간호 출간식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튿날 오후에 백산호텔에서 고고성을 울리는데 연길 시인들에게는 대대적인 행사였다. 저녁 만찬시간에 김응준 연변시협회장님을 비롯해 여러 시인들 그리고 연변라디오 방송국 김계월아나운서도 참여했는데 이는 한국에서의 가까운 시인들과의 만찬 다름 아닌 화기애애한 분위였다. 특히 김계월아나운서는 내가 중국 만주땅에 오기 일주일 전, 연변라디오 프로에 나를 특집으로 한 프로를 내보낸 바로 그 진행자여서 더욱 반가웠던 것이다.
수억 만리라 해야 옳을지, 한국 인천국제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편으로 서해를 거슬러 올라 북경쪽을 돌린 기수를 다시 만주땅 장춘으로 방향 바꾸어 착륙해 장춘에서 하룻밤, 길림에서 하룻밤 그리고 이곳 연길까지 장장 6시간 남짓 고속버스에 몸 실어 도착했으니 이 여정이란 돈하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여행경로였다.
일정상 이튿날 오전에는 일송정과 해란강, 윤동주 생가, 묘소, 용정중학교, 용두레를 답사하기로 해 용정쪽을 향했는데 왼통 흐린 날씨였다. 일송정에서 해란강을 굽어보는데 이때부터 빗방울이 들기 시작했다. 윤동주묘소는 가파른 시골 산언덕 진흙길로 간간히 내린 빗방울에 미끄러워 택시가 오르기에도 힘이 들었다. 산언덕을 올라 한참을 능선따라 들어가니 공동묘지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거기 윤동주묘소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모습처럼 묘비가 말해주듯 우릴 반겼는데 꽃사과나무 한 그루가 왼편에서 가지를 늘여 가버린 시인의 묘소를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는 빗방울이 아니라 빗줄기가 내리꽂히기 시작했는데 역시 한 많은 시대를 살다간 시인은 우리 한국에서 찾아온 시인들을 알기나 하는 듯 하늘이 하염없는 빗줄기를 내리며 그 원한을 말해주는 듯 했다. 민족이란 무거운 말이 떠올랐는데 윤동주나 나나 민족정서를 바탕으로 시를 써온 같은 부류의 시인이고 보면, 힘없는 민족 앞에는 시인도 나약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용두레우물을 찾았을 때는 더욱 장대같은 비가 쏟아져 내려 이곳 용두레에서 <한중교류 해란강 시낭송회>를 가졌었다.
<계속>
**서지월/시인. 1955년, 중국 맹상군과 대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 그리고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 대구 달성에서 태어났다. 현재, 한중공동시잡지「해란강」편집주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