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시가 있는 창]오세영 시-''구룡사 시편'

아미산월 2007. 10. 27. 02:36

[시가 있는 창]오세영 시-''구룡사 시편' 

 

龜龍寺 詩篇

 

- 세상은

 

 

오 세 영

 

누굴 사랑했던 게지.
화사하게 달아오른 그녀의 혈색
까르르 세상은 온통 꽃들의 웃음판이다.
누굴 미워했던 게지
시퍼렇게 얼어붙은 그녀의 낯색,
파르르 세상은 온통 헐벗은 나무들의 울음판이다.
아홉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하지만 산에서
대체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미움도 사랑도 버려야만 산문에 든다 하건만
노여움도 사랑도 버려야만 하늘문 든다 하건만
먼 산 계곡에선 오늘도 눈 녹는 소리.
사랑 보다 더 깊은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더란 말인가,
흐르는 물 위엔 뚝뚝
꽃잎만이 져 내리고…

 

**서울대 국문과 교수.시인.한국시인협회 회장.

 

●●시 해설●●     

 

-한국의 사찰은 우리의 고유 민족문화 유산 다름 아니다. 그 근거야 여러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겠지으나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공동체 삶의 염원이 깃들어 있으며 수행은 곧 인간정신과 맥락을 같이 하기에 많은 이들이 절간을 찾는다.

특히, 문인 가객들에게 있어서 절간은 단 한계 높은  정신의 터라 할 수 있다. 오세영시인은 남달리 절간의 정서를 때묻지 않은 서정의 가락으로 퍼내는데 가장 앞서 있는 한국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 감히 말할수 있는데 「구룡사 시편」봄을 노래한  '세상은'은 인간세상이라기 보다 꽃 피는 세상인 것이다.  그 꽃 피는 세상은 구룡사에서 와 본 산속의 꽃피는 세상 다름 아니다.

그냥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화사하게 달아오른 그녀의 혈색'은 꽃이 핀 모습이며 '시퍼렇게 얼어붙은 그녀의 낯색'은 아직 해동하지 않은 나무들의 형상인데 '웃음판'과 '울음판'으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절간의 산속 세상도 기쁨과 슬픔이 어우러졌고 보면 어느 세상이나 한쪽만의 형상은 없음을 잘 제시해 주고 있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먼 산 계곡에선 오늘도 눈 녹는 소리'라 했으니 곧 삼라만상의 화해정신을 의미한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지만 그것에 실려 수천년을 거듭해 인간이기에 자연이 곧 세상의 공명을 두루 이룸은 두 말 할 나위 없다. 누굴 사링하고 미워하는 것도 인과에 의한 것이거늘 계곡의 '눈녹는 소리'가 먼저 세상 평화를 위해 멍울진 마음을 푸는 것이다.

시인이 '미움도 사랑도 버리'고  '노여움도 사랑도 버려야만'만  새로운 세계 즉, 근심 걱정 고뇌가 없는 세계에로의 몰입을 노래했듯이,  산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바로 '눈 녹는 소리'인 것이다. 나아가서  '사랑 보다 더 깊은 사랑은 이미 / 사랑이 아'닌게 아니라 더 높은 경지에 이러름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아홉 길 물속은 알아도 /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대목인데, 이 시에서 ' 아홉 길 물속'은  먼산 계곡의 '눈녹는 소리'이다.  자연의 섭리는 체득할 수 있으나  '한 길 사람 속'의 마음은 읽을 수 없으니 그게 인간세상의 불화(不和)인 것이다. 보라, 구룡사 절간 산속의 세상은 조화(調和)를 이루는데 절간 밖의 인간세상은 늘 불화(不和)로 얼룩져 있으니 말이다. (서지월시인/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