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시향만리]서지월, 그 이름 돌에 새기다

아미산월 2007. 10. 27. 01:45

[연변시잡지/특집]<시향만리>(창간호)서지월, 그 이름 돌에 새기다

 

서지월, 그 이름 돌에 새기다

 

― 한국시인 서지월을 만나

 

석화

 

1)

 

 지난 2007년 4월 24일 오전 11시, 한국 대구광역시 달성군 비슬산 자연휴양림에서는 시와 시인을 위한 뜻 깊은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으니 바로 한국의 대표적 민족서정시인 서지월시인의 시비 《비슬산참꽃》제막식이었다.

 

비슬산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원근에 소문난 명승지이며 달성군의 자랑이다. 이 비슬산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사월이면 능선마다 계곡마다 참꽃― 진달래꽃을 온 산에 가득 피워내 하늘 끝까지 타오르는 연분홍 불길을 지펴 올리고 있으니 또한 보는 이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절경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이 비슬산 한 자락을 깔고 거대한 자연석 하나가 넉넉한 품으로 가부좌를 틀듯이 넌지시 앉아있는데 바로 그 돌의 가슴 한 복판에 서지월시인의 시 《비슬산참꽃》이 새겨져 있다.

 

비슬산 참꽃 속에는 조그만
초가집 한 채 들어 있어
툇마루 다듬잇돌 다듬이소리
쿵쿵쿵쿵 가슴 두들겨옵니다

 

기름진 땅 착한 백성
무슨 잘못 있어서 얼굴 붉히고
큰일 난 듯 큰일 난 듯 발병이나
버선발 딛고 아리랑고개 넘어왔나요

 

꽃이야 오천년을 흘러 피었겠지만
한 떨기 꽃 속에 초가집 한 채씩
이 태백 달 밝은 밤 지어내어서
대낮이면 들려오는 다듬이소리

 

어머니 누나들 그런 날의 산천초목
얄리얄리얄라셩얄라리얄라
쿵쿵쿵쿵 물방아 돌리며 달을 보고
흰 적삼에 한껏 붉은 참꽃 물들었었지요

 

2007년은 한국시인협회창립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시인협회에서는 그 기념사업 일환으로 한국 각 지역별로 한 명씩 향토적인 삶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시인을 선정하게 되었는데 대구 달성군에서는 바로 이 지역이 낳은 시인 서지월을 이미 2006년에 이종진 달성군수께서 선택하고 이듬해인 2007년 올해 제11회 '비슬산참꽃제' 행사기간에 돌에 그의 시를 새겨 넣어 이날 비슬산자락에 앉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달성군수 리종진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뛰어난 자연경관인 우리 달성군의 비슬산참꽃을 노래한 달성군출신시인으로 나아가서는 민족서정시인으로서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만주 땅까지 그 이름이 드높은 서지월시인의 시정신을 기리며 향토문화예술의 창달과 나아가서는 자랑스러운 달성군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취지에서 이 시비를 건립하게 됨을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인 오세영 서울대 교수는 ' 옛부터 북에는 영변의 약산이 있고 남에는 달성의 비슬산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풍광이 수려하고 인심(人心)과 지기(地氣)가 남달라 그 슬하에 수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특히 이른 봄의 진달래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그렇습니다. 서지월 시인은 문단에 등단한 이후  20여년 가까운 시작 생활을 통하여 한국 서정시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온 우리 시단의 보배입니다. 그가 쓴 많은 명시들은 수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다 아시다 시피 그는 또한 이곳 비슬산 자락에 태어나서 성장했고 또한 비슬산을 소재로 하여 많은 작품들을 써 왔습니다. 이와같은 시인의 시가 이제 시비로 건립되어 비슬산을 지키게 되었다니 매우 기뻐해야 할 일이아닌가 합니다.' 라 평했는가 하면,

 

한국 남도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히는 송수권 시인은. '소월의 고향 약산 진달래꽃밭이 있어 그 유명한 ‘진달래꽃’을 낳았듯이 서지월시인 고향인 비슬산 진달래꽃밭이 있어 ‘비슬산 참꽃’이 탄생된 것이라 봅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에 짝을 이루는‘흰 적삼에 한껏 붉은 참꽃물 들었었지요’의 절창이 나온 듯 합니다. 서지월 시인이야말로 대구광역시 달성군이 낳은 이 시대의 가객이요, 민족혼이 낳은 시인입니다' 라고 평했다.

 

 문학평론가인 한국방송통신대학 박태상 교수는 <서정의 질그릇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으로 서지월 시「비슬산 참꽃」작품세계를 '서지월시인을 '유독 김소월 - 서정주 - 박목월로 이어지는 한국의 전통적인 에스프리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주류 서정시인이다. 서지월 시의 감칠맛은 자연과 인간, 소리와 율동, 색채와 리듬, 광기와 일상생활, 선적 침묵과 동적 쾌활함, 고풍과 현대성, 계절적 순간성과 자연적 영원성의 우주적 이분법적 대립 항을 계열화하고 통합화하여 ‘화융의 미학’을 생활자기로 빚어내어 내놓고 있는데서 드러난다. 서정시의 아름다움을 이 이상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정도의 찬탄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시적 계보측면에서 정지용 - 조지훈 - 신경림으로 이어지는 고전적 아름다움과 민중적 흥취를 조화시킨 전통의 계승은 시인 서지월을 한국문학사에서 순수 서정시의 굳건한 초석으로 자리 잡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라 평했다.

 

 중국 <장백산>잡지사 총편 겸 길림신문사 사장인 남영전시인은,'이번에 시비에 옮긴 《비슬산 참꽃》은 참으로 멋진 시입니다. 붉은 참꽃, 흰 적삼, 밝은 달빛, 선명한 색채와 다듬이 소리, 물방아 소리, 흥겨운 노래소리가 달밤에는 삼베 짜고 옷 짓고 땀 흘리며 물방아 돌리고 낮에는 다듬이질 하는 시골 여인들의 삶과 어울리여 한폭의 생동한 그림으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줍니다.라고 평했으며, 그리고 필자도 서지월시인의 시비제막을 축하하여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한국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보냈다.


《서지월시인의 시〈비슬산참꽃〉이 돌에 새겨져 한국 대구광역시 달성군 비슬산자연휴양림에 세워진다니 매우 반갑습니다. 소월과 지용에 이어 아름다운 언어로 우리겨레의 고른 숨결과 맑은 정서를 담아온 서지월시인은 한국의 저명한 민족시인이면서 또한 그 이름이 두만강과 백두산을 넘어 제가 사는 여기 중국조선족동포들 사이에도 한국시인으로는 가장 널리 알려진 훌륭한 시인입니다.

 

참꽃은 진달래의 또 다른 이름이며 중국 연변지역에서는 천지꽃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른 봄에 먼저 피어나 찬바람을 이겨내는 인내와 새색시 연분홍입술같은 아름다움과 소박함을 함께 지닌 참꽃은 이제 산과 들, 온 천지에 만화방초의 새봄을 불러오고 우리 겨레의 가슴마다에도 영원한 봄을 불러올 것입니다.

그래서 김소월의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라는 시 〈진달래꽃〉이 있고 〈날더러 진달래꽃을 노래하라 하십니까〉로 시작되는 박팔양의 시 〈진달래〉가 있고 〈비슬산 참꽃 속에는 조그만/ 초가집 한 채 들어있어/ 툇마루 다듬잇돌 다듬이소리〉 들리는 서지월의 시 〈비슬산참꽃〉이 있습니다.

이제 서지월시인의 시가 돌에 새겨져 햇볕에 빛나고 이슬에 씻기며 비와 바람을 거슬러 세월과 함께 무궁한 시간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고결한 시의 참뜻을 알고 고향이 낳은 시인의 가치를 높이 새겨 고향의 명승지에 시비를 세워주신 달성군 군수님이 고맙고 또 이와 같이 시의 멋을 아는 달성군 군민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

 

이미 한국 중아일보「시가 있는 아침」2001년 4월 5일자에 서울대 오세영 국문과 교수에 의해 다음과 같이 소개된 바 있는 시이기도 하다. ㅡ<봄에 피는 우리 산천의 꽃들은 많다. 그러나 감동을 주기에 진달래꽃, 즉 참꽃만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어쩐지 우리 민족의 한과 넋이 망울져 피는 꽃 같기 때문이다. 우리 국토 어디에서든 온 산야에 무리지어 청순하게 피어나는 그 꽃색깔이, 잔인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이른 봄에 피는 그 강인한 생명력이 유달리 시련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 민초의 모습을 연상시켜서 그럴지도 모른다. 서지월시인의 시에서 유달리 잘 나타나 있다.>고 시비에서도 소개 되어 있다.

 

서지월시인은 이와 같이 한국시단에서 우리의 겨레의 서정을 가장 훌륭하고 가장 온전하게 자기 시에 담아내는 민족시인으로 높이 평가받는 중견시인이면서 또한 중국조선족시단에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서 우리에게 많이 친숙한 시인이다. 그것은 지난세기 90년대부터 그의 많은 시작품들이 《연변문학》, 《아리랑》,《장백산》,《송화강》.《압록강》등 문학지와 《연변일보》, 《길림신문》, 《흑룡강신문》,《료녕신문》등 일간지들에 소개되어 독자들과 만났으며 더욱이 2002년에는 시집 《백도라지의 노래》가 《장백산모드모아문학상》에 당선되어 한국문인으로서는 최초로 중국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어 중국에서 조선어시집까지 내게된 영광까지 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2)

 

서지월시인은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날인 1955년 음력 5월 5일 단오날, 한국 대구 달성군 가창면에서 출생하였다. 고향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대륜중고등학교를 거쳐 대구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였으며 1985년 시 《겨울 신호등》외 3편이 《심상》신인상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어 1986년 동시 《바람에 귀대이면》 이 《아동문예》신인문학상에 당선되고 같은 해 또 시 《조선의 눈발》이 《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당선되면서 정열적이고 본격적인 시문학창작에 진입하였다.


서지월시인은 이와 같이 불타는 문학열로 자신의 모든 것을 시에 바쳐왔다. 시인의 말을 빌려 적는다면 《 나에게 삶의 전부가 시였으며 시가 내 삶의 전부였다.》(시집 《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 자서에서)는 것이다. 서지월시인은 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나는 내가 가는 길을 잘 안다. 내가 가는 길이 지극히 호젓한 산길이라는 것, 그래서 더욱 고달픈 길이라는 것, 여기에 세상인정도 묻어있으면 좋으련만 순전히 풀이나 꽃, 흙냄새, 새소리… 이런 것들뿐이다. 갈 데까지 가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비 피하는 조그만 초막이라도 생겨날지 모르는 일이고 보면 말이다.》(동상서)

 

시에 대한 이와 같은 초지일관의 올곧은 문학정신은 그의 시세계를 폭 넓게 펼쳐주었는바 한국의 자연과 력사와 현실이 모두 함께 어울려져 그의 가슴속에서 삭히고 익혀져 유려한 운율과 함께 향기로운 시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일찍 1992년, 한국시문학의 대부로 불리우며 '시(詩)의 정부(政府)'라 칭해지며 한국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서정주시인도 서지월시인의 시적재능을 높이 사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격찬을 아끼지 않은 바 있다.


《아리랑 쓰리랑 섞갈려 도는 물레방아 물소리같이/ 차고 쓸쓸한 아침/ 김칫국에 밥 말아 먹고 강산에 돋은 해의 아침/ 그날의 오면 장구는 울리라… 〈우리는 마부〉라고 제목한 그의 시 한 구절인 이런 표현에 접할 때에도 무작정 반가운 호감만이 앞선다. 물론 여기에는 어렸을 때부터 나도 그런 밥을 먹어온 동일경험에 대한 공감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하늘의 해까지를 갖다가 그 동일경험자로 만들어 놓은 그의 그 톄포르마숑의 독특한 재간에 찬성하는 것이다. 서지월시인에게는 이런 시표현자의 근본적 능력들이 그의 시의 곳곳에서 잘 살아 나타나고 있어 호감이 간다.》(시집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 서문에서)

 

그의 이런 각고한 노력은 풍만한 결실로 이루어졌다. 그는 이미 시집 《꽃이 되었나 별이 되었나》(1988년), 《강물과 빨래줄》(1989년), 《가난한 꽃》(1993년),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1994년), 《백도라지꽃의 노래》(2002년), 《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2003년)등 다수의 시집을 상재하였으며 1993년 제3회 대구시인협회상을 수상하는 것을 시작으로 1998년 제1회《한하운문학상》본상 등 많은 문학상을 섭렵하기에 이르렀다.

 

3)

 

서지월시인은 일찍부터 자기 시문학의 한 부분을 북방, 북녘하늘에 바쳐왔다. 시인은 2002년 《장백산모드모아문학상》을 수상하러 장춘에 왔다가 자신의 북녘하늘에의 그리움 그리고 이 땅과의 인연에 대하여 이렇게 피력하였다. 《아무튼 이 인연이 내 생애에서는 대단한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그는 이어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기필코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5천년 우리민족의 력사와 얼에 대해 애착이 있었다. 게다가 시인이 되고 나서도 나는 늘 머리맡에 맑은 랭수 한 그릇 떠놓듯 중국 땅에 생활하는 우리민족의 안정과 풍토에 대해 굉장한 매력을 갖고 있었으며 미리 써놓은 작품으로 시집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를 낸 바 있다. 》

 

 <북방하늘의 땅>이라는 시에서도 "아아, 북방하늘의 땅 / 눈물 마를 날 없지 않았지만 / 저 하늘이 저리 푸르고 / 바람 불어와 옷깃에 머무는 것 보면 / 흐르는 강물도 잔돌들 껴안고 살아가며 / 물동이 물 이고 오는 여인이 / 내 누이인 것을! / 나의 더운 피가 / 저 하늘에 스며있음을 알아 / 밥 아니 먹어도 배 부르고 / 님을 못 만나도 슬퍼지 않았네 / 모든 것이 사위어갔지만 / 해가 떠서 열매 맺고 / 달이 떠서 향기로운 것 보았지 / 내 눈물 보태어도 다함 없지만 / 아아, 북녘하늘의 땅!" 이렇게 읊었던 것이다.

 

1994년 한국 《시와 시학사》에서 펴낸 시집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에는 《해란강아 네가 부르면》이란 제목의 다음과 같은 시 한 수가 있다.

 

눈 딱 감고
해란강아 네가 부르면
스르릉 스르릉 거문고 밧줄 타고
발등 다리 허리 가슴 목까지
거슬러 올라가 너의 이마에 닿으리

 

네 이마 위에 흥건히 젖어서 핀
허이연 깨꽃, 깨꽃 만발한 강둑을 돌아
거기 배 깔고 누운 돌거북
천년 침묵의 베갯머리 흔들어 깨워
따스한 볼에 대여보리

 

싸늘히 식어 점점이 멀어진 별빛
별빛 불러들여 대나무 점치고
귀신 붙는다는 아홉 살 난 아이
아홉 구멍의 떡시루 항아리에
다시 불 지펴
있잖은가 우리의 하늘이 둥글고
우리의 피 예 있음을
너는 알리니

 

― 《해란강아 네가 부르면》 전문

 

이 시는 시집에 수록되기에 앞서 1992년 3월, 한국 《현대문학》지에 발표되었었다. 당시까지 시인은 아직 중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였으며 다만 아득한 그리움으로만 이 시를 창작하였다. 시집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의 대부분 작품들이 이와 같이 한반도 남쪽에서 멀리 북쪽하늘을 우러러 띄어 보내는 절절한 연서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 시집에서 시인이 북방, 중국 땅을 그리며 읊은 시를 여러 수 발견할 수 있다. 상기 《해란강아 네가 부르면》이외에도 우리는 이 시집에서 《두만강 돌멩이》, 《일송정 푸른 솔》, 《압록강은 말하라》, 《해란강은 흐른다》, 《두만강 푸른 물은》등 제목을 읽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시인은 북방, 이 우리민족의 시원(始原)의 전설이 서려있는 하늘과 땅에 끝없는 사랑을 바치면서 《5천년 우리민족의 력사와 얼에 대한 애착》을 안고 그 후 무려 여섯 차례나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가는 머나먼 길, 동북삼성 력사탐방의 대장정길에 올랐다. 근 10년에 이르러 진행된 이 6차의 답사는 여름에 이루어진 적도 있었지만 동지섣달 눈보라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거침없이 진행되었으며 그 로정은 남쪽의 단동항으로부터 심양, 장춘, 길림, 환인, 집안, 통화, 연길, 도문, 목단강, 할빈, 치치하르에 이어 중국의 최북단 막하와 흑하, 흑룡강 최하류인 동강시와 삼강구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에 대하여 시인은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중국 땅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98년 여름의 일이었다. 그 후 몇 차례 다녀온 것이 꿈에서도 잊지 못할 확고한 나의 정신사가 되었다. 》(《장백산모두모아문학상》수상소감에서)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무어라 중얼거리는 마음의 저편
돌 속의 바다가 길을 내어

 

하나의 나뭇잎이 출렁일 때마다
떨어지는 물방울
이마에 솟아올라 떨어지는 물방울
행방(行方)을 찾아가는 머나먼 길

 

어느 날 샘물가에서
목이 말라 퍼마시던 한 그릇의 물
그 물을 되찾아오기까지
걸어서 헤매야 할 머나먼 길

 

길 위의 나무 한 그루…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전문

 

그렇다. 이제 서지월시인의 시의 행방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고향의 비슬산자락에 시 한수 돌에 새겨 넣고 그는 또다시 투박한 등산화의 들메끈을 바짝 조이며 북쪽 땅에 대한 끝없는 목마름으로 가슴이 부풀어 있지 않을까. 한 획 또 한 획 돌에 시를 새겨 넣는 정성으로 북녘의 새파란 하늘에 또박또박 마음의 글귀를 새겨 넣으려 벌써 이곳으로 떠나고 있지 않을까. 어서 신발을 꿰신고 님마중 나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