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2007.6)<해변시인학교 특집>서지월 시-'대신동 서문시장 점술장이 할머니가'외2편
[서지월시선]
1.대신동 서문시장 점술장이 할머니가 2.내 시비「비슬산 참꽃」을 생각하며 3.허무한 날의 생각
<시-1>
대신동 서문시장 점술장이 할머니가
서 지 월
내가 31년전에 만난 대신동 서문시장 점술장이 할머니 31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곳 떠나지 않고 점을 치는데, 점을 치는데 조그만 놋그릇에 냉수 한 그릇 떠놓고서는 엽전 서너 개 한데 모아 손으로 문질러 상위에 휙 던지며 흩어지는 엽전의 그 쨍그랑 소리 울려퍼지면서 다섯살 먹은 선녀동자 목소리 내며 말을 하는데 1년에 한 두 번 놀러가는데
내가 뜸하면 왜 안 오시나 하면서 기다려 지더라고 말하는 올해 69세의 그 점술장이 할머니 나하곤 무슨 인연인지 31년을 끊이지 않는 질긴 인연에다가 100% 알아맞히니 용하긴 참 용해!
돈도 주면 잘 안 받고 반만 달라 하고 (그렇다고 내가 반만 주는 성격 아니지만) 내가 나오면 골목 끝까지 따라나와 잘 가이시데이~, 잘 가이시데이~ 하시는 할머니
높은 벼슬 하며 살아가는 내가 아닌데 두 손 모으시고 허리 굽히시며 나를 배웅하는 대신동 서문시장 그 점술장이 할머니
반년 넘게 바쁘게 지내다가 수염도 안 깎고 목욕도 못하고 덥수룩한 모습으로 찾아갔더니
-이렇게 좋은 사람 어디 있나 누가 괴롭히나, 당할 자 없을 건데...... 하시는 거였다
지금 SBS-TV드라마「연개소문」에서 연개소문 당할 자 없듯이 1년 중 가장 원기왕성한 날인 오월 단오날 연개소문과 생일이 같은 내가 아닌가
아저씨가 뭐 글 쓰는가 보는데 아저씨 글 써놨는 거 보면 부드럽고 푸근한데 얼굴 쳐다 보면 겁도 나고 덜덜 떨리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 있다고 일러주시네
무슨 일 생길 때마다 내게 아저씨가 이긴다 이겨! 세상에 아저씨 당할 자 없고 아저씨는 똑바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누군든 대들다간 크게 다친다 다쳐! 또, 아저씨가 품어 마음 먹으면 세상에 안되는 것이 없어! 이렇게 다섯살 먹은 선녀동자 목소리 내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 많이 사달다며 조르는 것이었다
**여기서 '공'이란 다섯 살 먹은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가지고 놀려고 공 사달라 하는 것임. 비위를 맞춰줘야 더 잘 말해주니까 말이다. 재미있지 않는가.
<시-2>
내 시비「비슬산 참꽃」을 생각하며
서 지 월
잠에서 깨어나 아침 이슬을 맞았겠다 하루종일 햇빛을 받았겠다 구름 불러 놀았겠다 서산의 석양을 비꼈겠다 깊은 밤 달빛에 취했겠다 별들과 속삭이다가 별빛 속에 잠들었겠다
다시 잠에서 깨어나 아침 이슬을 맞았겠다 하루종일 햇빛을 받았겠다 구름 불러 놀았겠다 서산의 석양을 비꼈겠다 깊은 밤 달빛에 취했겠다 별들과 속삭이다가 별빛 속에 잠들었겠다
또다시 잠에서 깨어나 아침 이슬을 맞았겠다 하루종일 햇빛을 받았겠다 구름 불러 놀았겠다 서산의 석양을 비꼈겠다 깊은 밤 달빛에 취했겠다 별들과 속삭이다가 별빛 속에 잠들었겠다
비가 오면 빗줄기와 눈이 오면 눈송이와 입맞춤 하고 안개가 찾아오면 안개속 물알갱이들과 벗 되어 천년을 살아가리라
<시-3>
허무한 날의 생각
ㅡ내 나이 오십에
서 지 월
내 나이 오십이 되고 보니 미당도 가고 편운도 가고 대여도 가고 변한 건 그분들이 세상에 없다는 겁니다 아직 살아계시는 김종길 김남조 선생님은 일본 도쿄 '아시아환태평양시인대회 함께 참석하며 이승의 하늘을 두루 오가고 했지만 미당이, 편운이 그리고 대여시인이 풍미해 온 하늘은 그만 정지해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왜 꽃은 피어 시들고 나뭇가지는 잎을 땅으로 흘리는지
서안에서 이륙한 여객기가 왜 돈황에서 착륙하는지
모래사막 횡단하며 터벅터벅 걸어가던 낙타의 발자국도 비단길만 남긴 채 어디에서 멈춰 버렸는지
내 나이 오십이 되고 보니 불붙던 여름날의 사루비아 꽃밭마저 앙상한 꽃대만 남기고 얼굴없는 바람만 놀다갑니다
내가 만나지 못한 소월, 목월, 지훈 이분들은 어디 가셔서 영 소식 없는지 살아간다는게 아리송할 뿐입니다
<시작 노트>
살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생겨나는데 이 또한 심사숙고해 보면 인생의 참맛 가운데 하나이리라. 내 시비 「비슬산 참꽃」이 본의 아니게 비슬산 휴양림에 아주 크다랗게 세워졌는데 <비슬산 참꽃>이라는 그 시는 20년 전에 씌어진 것으로 기억 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직 살아갈 날들이 많고 한국문단으로 보면 중견에 속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생각해 보면 '내가 벌써 중견시인이 됐나?' 하고 의아할 뿐이다. 어쨌든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요, 가장 향토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우리 한국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아직 잘 실천이 되고 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토속적이며 향토적이며 전통적이며 민족적인 내 시가 시대에 디밀리지 않고 그게 천년 묵은 바위에 꽃이 피어나듯 세겨져 산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휴식공간이 되었다는 것은 기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1988년인가 20년전에 나는 나의 스승인 박재삼선생님의 시비가 박재삼선생님 생전에 고향 삼천포에 노산공원에 세워졌을 때 거기 참석한 일이 있다. 물론 신문기사를 보고 직행버스로 혼자서 달려갔던 것이다. 그때 나는 스승의 시비 제막식을 보고 감회가 새로웠는데, 이미 스승께서 가고 없는 하늘 아래 내 시비가 세워졌다니 한편으론 마음이 적적하고 외로움도 느낀다.
내 아버지는 1897년생으로 김소월 보다 일찍 태어났으며 서당에서 한학을 하신 분이다. 한글로 글을 공부하고 쓰신 분이 아니라 순전히 한문으로 글쓰며 살아오신 분이다. 모든 한문서적을 원문 그대로 읽으시며 외우신 것인데, 시를 많이 지으시기도 했는데 모두가 한문으로 지으신 것이다. 이에 반해 나는 그 아들로 태어나 시를 써 왔지만 한글로 시를 써 온 것이다. 세상 떠신지 아주 오래 됐지만 내 아버지는 내가 한글로 시를 쓰는 시인인 것을 모르고서 세상을 뜨신 것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한국적인 숨결을 말하라면 이건 우리가 살아온 역사나 전통, 풍습, 가문 등에서 번져나오는 정신일 것이다. 그게 오늘을 지탱해 온 우리의 힘 아니겠는가. 절간이라는 것도 불교를 가진 집안에서는 대대로 믿어온 신앙으로서 삶의 희비가 거기 녹아들어 있다. 그런 지극정성의 부모가 계셨기에 오늘의 '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특히, 미신이라 일컫는 점쟁이이야기인데 이 또한 옛부터 즐겨 지켜온 민간신앙 다름 아니다. 나는 이걸 아주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샤머니즘으로 통하는 이 점술쟁이의 행위나 서낭당 돌무덤 등을 생각하면 나는 우리 민족, 특히 서민들의 희비가 묻어있는 정서라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점쟁이에 관한 시도 더러 쓰여졌는데, 떡시루항아리 중에 아홉 구멍짜리가 있다. 이게 토속신앙의 하나로 사용되었는데 나는 이런 것에도 굉장한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어떤 이는 '지금 서지월시인이 무슨 말 하고 있는가' 하고 의아해 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나를 두고 마구 구태의연하니 캐캐묵었느니 하고 빈정대기도 하겠지만, 몰라도 무얼 한참을 모르는 요즘 시인들이 안스럽다고 나는 감히 말하는 것이다. 요즘 보라, 시라는게 독특한 자신의 색깔이나 자신의 영역 없이 누구나 보고 듣고 느끼고 누구나 받아들이는 기법 외에 어떤 체온이 풍겨져 나온다는 말인가. 그런 시를 가지고 요즘 대표적인 시인 양 떠들어대고 거기 우우 줄까지 선다.
전남 강진에 있는 김영랑시인 생가 초가나 전북 고창에 있는 미당 서정주시인 생가가 다를 바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통나무와 흙과 문살과 마루만 갖추어 초가로 짓기만 하면 된다는 것인가. 그런 사고(思考)가 문제인 것이다. 영랑 생가면 영랑 생가다워야 하며 미당 생가면 미당 생가다워야 하는데 원래의 집의 구조를 허물어버리고 똑같은 초가기법으로 집짓기전문가에 맡기다 보니 특색도 전혀 없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인이지 독일인이나 프랑스인이나 영국인이나 러시아인이나 미국인이 아니잖은가. 우리가 한국인이라면 우리의 시작품도 한국적이어야 그 시인이 진정한 한국의 시인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어려 부류의 시세계, 기법, 안목 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발딛고 사는 땅위에서 진정한 시인의 사명이라면? 하고 해 보는 말이다. (서지월/記)

<약력>
• 1955년,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 대구 달성 출생. • 1985년 10월, 제2회「전국교원학예술상」문예부문에 시 <꽃잎이여>로 大賞에 당선, 문교부장관상 수상. • 1985년『심상』 신인상 시 당선으로 등단. • 1986년『아동문예』 신인문학상 동시 당선. • 1985년『한국문학』신인작품상 수상. • 1999년, 전업작가 정부특별문예창작지원금 수혜시인에 선정됨. • 2002년, 중국「長白山文學賞」수상. • 2006년, 한국전원생활운동본부 주관, 詩碑「신 귀거래사」가 영천 보현산자연수련원에 세워짐. • 2007년, 달성군 주관, 한국시인협회 MBC KBS 등 후원으로 詩碑「비슬산 참꽃」이 비슬산 자연휴양림에 세워짐. • 현재, 한중공동 시전문지『해란강』한국측 편집 주필.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
[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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