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쓰기와 읽기/▷조선족 詩 해설

[지상시창작강좌]<1>전서린 詩-'밤비'

아미산월 2009. 7. 17. 04:02

**[지상시창작강좌]<1>전서린 詩-'밤비'

 

 

밤비

 

전서린(연변대학 조문학부 학생.전은주)

 

온다는 기별이 없이
간다는 인사도 없이

 

고요가 잠든 밤
발걸음을 죽이고 오셨습니다

 

이른 아침
이별에 젖은 풀잎의 마음

한 방울 이슬로 반짝입니다

 

아, 그대는 차라리
소나기 되어 오시옵소서

 

**연변시인협회 시총서「시향만리」(창간호)에서.

 

 <해설>

 

ㅡ내가  2007년 여름 연길시인협회 창립 1주년기념 행사 및 연변시인협회 총서「시향만리」(창간호) 출간식에 한국시인으로 초청 받아 갔을 때, 백산호텔 행사장에 들어서는데 반갑게 안내해 준 연변대학 종소리문학회 학생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에 전은주양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 대학생들과 같이 밝은 표정의 조선족 대학생들 보고 역시 '내 민족의 딸들이로구나!' 하는 감명을 받았으며 만주땅을 사랑하는 내 펄펄 뛰는 가슴에 꽃을 달아주었던 학생들이 아니던가.

 

늘 머리맡에 두고「시향만리」를 펼쳐 찬찬히 읽어보니, 거기 전은주양의 좋은 서정시를 한 편 발견한 것이다. <밤비>라는 시인데, 시를 좋아하며 시쓰기를 즐겨하면서 장차 중국 조선족문단에 참신한 시인이 되기를 꿈꾸는 젊은 '니카문학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 시를 소개하는 것이다.

 

<밤비>라는 이 시는 전혀 평범한 작품이 아니다. 어떻게 잘 쓰여졌는가 보자. 밤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온다는 기별이 없이 / 간다는 인사도 없이'라 표현하며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잘 구사했으며, '고요가 잠든 밤'이 추상적 표현이기는 하나 여기서는 별 무리 없이 쓰였으며, '발걸음을 죽이고 오셨습니다'라는 정중한 표현의 의인화도 빛나 보이는 대목이다.

 

'이른 아침 / 이별에 젖은 풀잎의 마음' 역시 추상적 표현이나 아주 썩 잘 구사한 문장으로 돋보인다. 간밤에 비가 왔기에 풀잎에 이슬이 맺혔다는 '밤비'와 '아침 이슬'의 상응관계가 바로 전은주양의 상상력에서 빚어진 사물에 대한 깊은 관조인 것이다. 거기다가 또 그 이슬을 맺히게 한 '풀잎의 마음'이라 한 것이다. '풀잎의 마음'이 무엇인가. 사람도 헤어지면 눈물방울 흘리지 않는가. 간밤에 비가 '발걸음을 죽이고' 와서는 떠나갈 때도, 첫연에서 이미 제시하고 있듯이 '온다는 기별이 없이' 왔으며, '간다는 인사도 없이' 가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살펴보면, 이 시를 기성시인들 작품 못지 않게 큰 울림을 주는 대목이 있는데 바로 마지막 연이다.

 

아, 그대는 차라리
소나기 되어 오시옵소서

 

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구조가 그것이다. 아주 문장표현을 무리없이 잘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깊은 사유의 목소리도 들어있는데 바로 '소나기되여 오시옵소서'이다. 이 놀라운 대목에 이르러 나는 깜짝 놀라고 소스라쳐 넘어져서 허리뿐만 아니라 온몸 다칠 뻔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간밤 온 비는 보슬비나 부슬비 이슬비 정도 아니겠는가. 올려면 차라리 '소나기 되어' 퍼부어라는 이 강렬한 육성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단 말인가. 서정시에서 이런 울림폭이 큰 표현은 과거 서정시인들의 시에서도 잘 찾아지질 않았던 대목이기도 하다.

 

그것도 아직 한창 꽃 피워 나가야 할 어린 꽃송아리'(미당 서정주의 표현을 빌면 '꽃송아리') 같은 대학생이 강렬한 표현으로 무리하지 않게 마지막 연에서 보여준 역동적인 상상력은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이는 프랑스 폴 발레리의 상징주의나 미당 서정주의 생명의식에 대한 앙양으로 읽힌다.

 

한국의 경우, 단군 이래 오천년 역사의 최대의 시인으로 평가 받고있는 서정주시인이 27세 무렵 거기 연길-용정에서 근 1년 남짓 머무르며 시를 썼는데(그래서 만고에 빛나는 첫시집「화사집」을 세상에 내놓았던 것이다) 그 기운이 스며있는 땅이라서 서정주와 같은 대담하면서 육감적인 시가 전은주양에게 옮겨가 쓰여지게 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이 시에서, '소나기 되어 오시옵소서'의 '소나기'라는 이미지 하나 때문에 이 시의 위상을 고고성으로 높혔으며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조금도 손색없는 완벽한 작품으로 여기기에 감히 소감이랄까 평이랄까 해설이랄까 내 이름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부연]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서정주의 시가 많으나 그 중에서도 <신부(新婦)>라는 시를 최고로 꼽는 시인들도 많은데(이는 현재 한국의 저명한 대가급 시인들도 서정주의 <신부>, <부활>, <동천>등을 꼽는다) 바로 그 <신부(新婦)>라는 시의 근원지가 만주땅이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문학평론가인 연세대 유종호교수는 '미당의 머릿속에 들어가면 시가 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까지 피력했고 보면 말이다. 왜냐하면 시인은 시를 잘 쓰야 하고 평론가는 평론을 수필가는 수필을 잘 쓰야 하지 않는가. 그게 이름에 값는 이유인 것이리라. 그리고 가수는 노래를 잘 불러야 하고 농사꾼은 농사를 잘 지어야 하며, 붕어빵 장수는 검게 타지 않도록 노릇노릇하게 붕어빵을 잘 구워야지. 어머니는 밥도 잘 하고 빨래도 잘 해야 하듯이 말이다.

 

시인은 시를 잘 써야 옳은 일! 

 

(2008년 4월 22일 새벽 01시 31분에 쓰다. 한국 서지월시인/記)